김민정, 매일 앞으로 걸어가는 여자

김민정은 텍스타일 디자이너다. 천으로 된 무언가를 만들 때 그것의 가장 중요한 재료를 만드는 사람이다. 한국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했고 일본에서 텍스타일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기초를 단단하게 다져 올린 그녀의 성벽은 누구든 즐길 수 있는 원단과 가방으로 탄생했다. 이 탄생은 물 흐르듯 순리대로 살아온 그녀의 인생에서 당연한 것이다. 도톰한 머플러로 작은 체구를 감싸고 있던 그녀는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여유 있는 마라토너 같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내공을 쌓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그 내공을 펼쳐 놓는 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많이 분주하시죠?

똑같아요. 계속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에요.

매일매일 어떻게 보내세요?

매일매일 다른데 온종일 일을 해요.

안 힘드세요?

그러게요. 나이가 있다 보니까 요즘에는 체력적으로 조금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똑같아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그날 해야 할 일을 해요.

한국에서 텍스타일 디자인을 공부하셨고 일본에서는 미술 대학의 텍스타일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계셨었죠.

네. 제가 국내에서 공부했을 때의 선생님들께서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 외국에서 섬유를 아트적으로 배우신 분들이었어요. 디자인보다는 아트적인 것으로요.

실용성보다는 예술성 위주로요?

예술성이라는 것도 사실 애매한데요. 예술이 어떤 철학의 결과물로서 읽혀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물질에 집중하는 거죠. 한동안 물질에 철학을 끼워 맞추는 작업을 하다가 박사 공부를 하면서 미학 이론을 접하게 되었어요. 그 동안 내가 무엇을 했고 무엇이 문제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렴풋이 빛이 보이더라고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갈 때 일본으로 가게 된 거죠. 그곳에서 내가 봐야 할 곳은 현장이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갖게 되었어요.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동안 직조를 다루는 공장뿐만 아니라 좋은 공방들을 많이 찾아 다닐 수 있었고요.

그때 한국과 일본의 현장에 대한 차이를 많이 느끼셨겠어요.

한국에서의 현장 경험이 많았던 것이 아니어서 큰 차이는 잘 몰랐지만, 일반적인 차이는 있었어요. 국내의 산업 시스템은 대량 생산 위주잖아요. 한국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수출상품을 소화하기 위한 설비가 갖추어진 것이라면 일본은 20세기 초의 기술이 꾸준히 연결되어온 상태였어요. 환경은 더 낡은 셈이었죠.

1950년대식 기계로 직조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더 오래된 것들도 많아요. 실을 꼬는 기계는 100년이 넘은 것도 있고요. 지금은 그 기계들의 생산성이 매우 낮아서 사용하지 않아요.

어쩌면 가장 큰 차이는 완성도의 기준이 아닐지에 대한 생각도 드네요.

완성도는 물론이고요.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수량이 안 되면 기계를 작동시킬 수 없어요. 물론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대신 그곳은 여지가 있어요. 업주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한국은 그것이 돈이 아니면 어렵다는 거죠.

그녀는 두 가지 브랜드의 수장이다. 원단 브랜드 4T와 그 원단을 기반으로 제작하는 가방 브랜드 KIYA. 네 가지의 T (Textile, Traditionality, Technical, Team)를 의미하는 그녀의 원단은 모두 일본에서 제작한다. 자세한 이야기는 KIYA에 숨어 있다. 일본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가장 처음 방문했던 공장이 지금 그녀의 원단을 제작하는 곳이다. 남다른 인연으로 김민정의 성과 제작 공장 대표(야스다)의 성을 합쳐 KIYA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부 원단은 한국으로 넘어와 가방으로 만들어진다. 가방을 담당하는 공장을 찾는 것도 고된 여정이었지만 이제는 안정궤도에 들어섰다.

4T의 원단을 만들고 있는 일본 공장에는 모든 것을 짤 수 있는 환경이예요. 최첨단 직기와 직조 방식을 구현하고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최첨단의 방식을 아주 소규모로 하는 곳이에요. 일하는 방식이 연구소 같아요. 한국의 공장도 잘 만났죠. 맛을 살려주려고 노력하시는 분을 만나면 반가워요. 특히 같이 연구해주시려고 하면 더 감사하고요. 제가 봐도 하기 싫은 작업이거든요. (웃음)

특히 그라데이션 원단으로 제작한 가방에 애착을 갖고 계시다고요. 다른 것들에 비해 직조 기법이 까다로운가요?

우선 그라데이션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웃음) 직조보다는 염색 공부를 더 오래 했고 색을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직조로 그라데이션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일반적인 원단을 보면 아주 작은 모티브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어 있어요. 그라데이션은 그런 반복 단위가 전혀 없어요. 무작위로 몇천 개의 바늘이 계속 움직여야 해요. 기계한테 굉장히 무리가 되는 방식인 거죠. 안된다고 늘 발목을 붙잡던 공장의 대표도 결과를 보고 좋아했어요.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을까 생각을 하고 했던 것이라면 그라데이션 기법은 꼭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를 갖고 한 거에요.

색을 좋아하셨다고 했는데 원단과 가방은 모두 색이 없는…

학교 다닐 때 색을 정말 많이 썼어요.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 것도 좋아했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많이 썼죠. 분홍색 좋아하고. (웃음) 그 공장에 기본적으로 셋팅 되어 있는 실은 폴리에스테르에요. 많은 색으로 자연스럽게 만들 수 있지만, 값어치 있는 직물로 보이지 않았어요. 여러 차례 실험한 결과 위사(가로 방향으로 놓인 실)를 면으로 사용하고 검은색과 흰색으로 정리하는 것이 공장의 설정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직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색은 그 공장에서 가장 적합한 원단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었어요.

원단의 중간마다 실이 풀려 있는 가방도 있죠. 사용하는 사람이 부분적으로 커팅할 수도 있고요. 입체감이 있어서 실이 살아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런 방식은 아주 오래전에도 있었어요. 박사 논문의 주제였던 텍스타일 디자이너 아라이 준이치 선생님도 이 방식을 사용하셨고요. 60년대에 실을 컷팅하는 기법을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셨던 적이 있어요. 선생님은 몇백 년 전 일본의 제직을 현대화한 것이고 저는 선생님의 기법을 다시 현대화한 거죠. 한국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디자인,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사용하게 된 기법이에요.

텍스타일 디자인 그러니까 디자인하는 것이 좋으세요?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분이 하셨던 말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어요. 때꺼리 걱정만 없으면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고요. (웃음) 그냥 좋아요. 재밌어요.

그녀는 디자인과 제작을 넘어 판매를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 인사동의 작은 매장에는 그녀의 작업과 더불어 다른 분야의 작업이 전시되어 있다. 주기적으로 바뀌는 이 전시는 후배들을 위한 그녀의 작은 당김이다. 감각이 좋은 후배들의 작업을 세상 밖으로 소개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녀는 꼭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매장을 찾는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보면 볼수록 좋다는 분들이 많아요. 에코백인 줄 알고 구매하려다가 가격을 확인하고 놀라는 분들도 꽤 계시고요. (웃음) 자세히 들여다봐야 ‘아 에코백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사실 이 가방들은 사진을 통해 보는 것보다 실제로 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은 사진으로 보는 것이 더 예쁘잖아요. 그런데 사진으로는 프린트로 찍은 것인지 실로 짠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울 수 있어서, 실의 결이 느껴지는 실물의 진가를 알리기가 쉽지 않네요.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있다는 아라이 준이치 선생님의 말씀, 제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로 남고 싶으세요?

국내에서 텍스타일 교육이 시작된 지 대략 30년 정도 되었을 거에요. 그럼에도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디자이너가 많지 않아 안타까워요. 이런 마음을 달래는 것은 제가 더 열심히 공부하며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해요. 그런 활동이 후배들에게 빛이 되지 않을까요. 캄캄한 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빛이 되는 선배가 되고 싶네요.

그녀는 하면 되는 것들을 안 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없었던 부분을 잘 꼬집어냈다. 김민정이 시도했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것들이 우리 앞에 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이 잘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끝까지 하지 않았다.

사실 개인적인 능력이 있었다기보다 좋은 공장을 만났다는 것, 일본과 한국에서 좋은 스승을 만났다는 것. 이런 것들 덕분에 활동할 수 있는 거에요. 디자인은 계속 발전시켜야 할 부분이고요. 일단 기반이 되었으니까 열심히 해야겠죠.

실험과 연구는 계속 하실 거죠?

그럼요. 그런데 참 무서운 세계에요.

무서운 세계요?

너무 빨리 돌아가잖아요. 유행도 그렇고. 그래도 살아남아야 하고. 계속 하는거예요. 하던 대로.

이동하는 사람이 많은 분주한 전철역 근처에 있는 그녀의 작업실은 조용했다. 복층으로 되어 있는 그곳에는 큼지막한 책상 하나, 의자 두 개, 몇 개의 수납함, 밖을 볼 수 있는 창문이 있었다. 그리고 나란히 줄지어 있는 다양한 종류의 가방은 호위무사처럼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차분한 그녀의 목소리와 따뜻한 물을 끓이는 소리가 나머지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녀가 구사하는 문장에는 정확한 끝맺음이 있었고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갖는 신뢰감은 대부분 빗나가지 않는다. 그녀가 창조하고 있는 것들에서 빈틈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글 이원희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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