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 그릇이 무슨 죄?

암처럼 치료가 어려운 질병에는 여러가지 미신도 있기 마련이라 무척 이상한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다. 알루미늄 그릇에 대한 공포도 좀 비슷하다. 통 알루미늄 그릇에 대해 우리는 어떤 선입견을 갖고 있을까.

일본 디앤디파트먼트 프로젝트 서울점 오픈 과정에 참여하면서 그들이 흔히 사용한다는 ‘무수분(無水鍋)’ 냄비를 처음 접했다. 무수분 냄비는 1950년대에 처음 출시되었는데 지금까지도 같은 형태를 유지한채 시판되는 조리도구다.

제조사 동영상

무수분은 두꺼운 몸 전체를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 보기만해도 치매가 걸릴 듯한 겉모습을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고 ‘롱라이프디자인’ 부문에서 굿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통 알루미늄인 용기 자체의 여러 특성을 요리에 활용할 수 있긴 하지만 알루미늄 조리도구가 이렇게 흔히 쓰이는 이유는 … 편리하기 때문이다. 열 전도율이 높고 가벼운데 튼튼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일본에서 그릇 시장을 뒤지다 보면 무수분 말고도 편수냄비처럼 알루미늄으로 만든 것이 유난히 많은 편이다. 우리가 막걸리를 먹을 때 즐겨 사용하는 양은 주전자도 일본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주전자를 만드는 대구 지역의 어느 공장에서는 일본에 수출할 물건만은 노랗게 코팅하지 않고 흰색 그대로 출고한다고 한다. 우리에겐 거의 상식이 되어버린 알루미늄 독성에 대해서 이토록 거부감이 없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그래서 좀 뒤져보았다.

화학적으로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알루미늄은 공기중에서 방치되거나 물을 넣고 끓이면 산화막을 형성해 외부로 성분이 용출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웃도어 용품점의 색색깔 용기들은 애노다이징 방식으로 외면을 처리한 알루미늄이다. 벌집같은 공극을 화학적으로 만든 후 색을 넣어주고 마지막으로 물에 넣어 끓여주면 피막이 생겨 색이 벗겨지지 않는 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관한 신화”, 미국 알츠하이머 협회 홈페이지

미국의 알츠하이머 연구소가 발표한 알루미늄과 치매와의 연관성 연구 결과는 흥미롭다. 미국에서 이 협회를 중심으로 주장하기 시작해서 주목을 받은 60년대의 알츠하이머-알루미늄 연관성 연구 결과들은 이후 우리나라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되었고 ,잊을 만하면 한번씩 ‘알루미늄=치매’라는 등식으로 (대학 교수의 인터뷰를 덧붙여)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런데 정작 해당 연구소는 오래 전에 그 주장을 철회했다는 걸 웹사이트를 통해서도 밝히고 있다.

물론 비슷한 연구는 그것 말고도 많았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알루미늄 성분 자체가 치매와의 상관관계가 없다고 부정할 일은 아닐 거 같다. 그러나 이런 의문점에 대해 실험을 진행하고 분석한 서구 유수의 음식 매체들은 안전한 그릇 재료가 무엇인가보다는 안전하게 그릇을 쓰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알루미늄 그릇으로 조리해도 해롭지 않아요”, 식품 전문 필자 제인 리어.

그도 그럴 것이 재료 특성을 따져보면 알루미늄에 비해 철이나 화학적으로 코팅한 금속, 화학적 성분으로 칠한 목기, 광택을 내려고 좋지 않은 성분을 섞었을 수도 있는 도자기 같은 그릇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힘들다. 일상에서도 그런 특성을 잘 알지 못하면 때로는 위험해질 수 있다. 그릇을 설거지하고 물기를 닦지 않은 상태로 말려 쓰면 어떤 종류의 그릇이든 쉽게 손상될 것이다. 또, 김치찌개를 끓인 후 냄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한다면 어떤 그릇이든 화학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충분하다. 유리는 안전할까? 유리 성분에 포함된 나트륨 이온과 물이 반응하면 투명한 유리가 하얗게 부식된다. 요즘 많이 쓰는 주철 냄비에는 유리질의 유약을 발라 굽거나 화학적 코팅을 한 경우가 많아서 벗겨지거나 손상되기 쉽다. 스테인리스 스틸도 합금 성분(철, 니켈, 크롬)이 섞인 비율에 따라 화학반응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

그릇의 종류는 많다. 그런데 유독 알루미늄엔 막걸리 주전자처럼 노랗게 염색이라도 하거나 테프론 코팅이라도 해야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근거 없는 믿음과 불안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까? 어쩌면 궁극의 ‘안전한 그릇’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에 드는 그릇을 장만해서 소중히 잘 쓰는 편이 나을 것이다. 소화제 한 알에 무려 200mg의 알루미늄이 들어있다는데, 극한의 조건에서도 그보다 많은 알루미늄을 먹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쿡스 일러스트레이터>지의 실험 결과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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