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슬, 공존한다는 것

서예슬은 예쁘다. 그녀가 만드는 장신구도 예쁘다. 그런데 예쁘다고만 하기에는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 있다. 작은 액자 속에 걸려 있는 토끼와 기린, 곰과 돼지, 코끼리와 말은 감정을 느낄 수 없는 표정으로 한 곳을 응시한다.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 그들의 눈은 서예슬의 손길을 거쳐 세상에서 가장 깊은 눈을 갖게 된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조용한 동네의 세탁소와 편의점 사이에 있는 아담한 작업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근래 만났던 사람 중 가장 밝은 표정을 가진 여자가 앉아 있었다.이 동네 조용하죠.
엄청 조용해요. 사람이 없어요. (웃음)

작업실이 아늑해요.

좁아서 아늑할 수밖에 없어요. 작아서 좋아요. 제 손에 다 닿을만한 크기거든요.

동물 장신구를 만드시잖아요. 그래서 좋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동물을 아끼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다는 말이 떠올랐거든요.

하하하. 동물 좋아하세요?

네. 좋아해요. 평소 동물에 대한 애착이 있으셨나요?

그럼요. 이건 선천적인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동물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때 사진들을 보면 길가에 있는 강아지들을 만지고 있어요. 위험한 줄도 모르고요. 반면 친언니는 무서워서 도망 다녔대요.

그녀는 동물 장신구를 만든다. 주재료는 양모 펠트이고 파라핀으로 피부를, 금속으로 복장과 장식 그리고 핀을, 천과 종이, 나무로 액자를 만든다. 어떤 재료든 부품을 쓰지 않고 일일이 모두 만든다. 평소에는 액자에 걸어두었다가, 장신구로 사용하고 싶을 때는 액자에서 동물을 분리하면 된다. 물론 어느 공간의 걸맞은 장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예쁘고 귀엽다고만 하기에는 자꾸 걸리는 감정이 있다. 분명히 다른 이야기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금속공예를 공부하셨죠. 언제부터 동물을 주제로 작업하셨나요?

처음에는 동물 장신구를 만들 생각이 없었어요. 금속으로 동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일러스트적인 느낌이 되거나 어떤 다른 느낌이 가미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졸업작품을 준비하면서 교수님께서 재료에 신경 쓰지 말고 가장 표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표현해보라는 과제를 던져주셨어요. 지금까지 했던 것들은 모두 잊으라 하시면서요. 그때 동물을 만들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거죠. 동시에 재료에 대해 고민도 했고요. 동물과 가장 친근한 소재를 찾다가 양모 펠트를 알게 되었고 처음으로 만들어봤어요. 생각보다 형태가 잘 나와서 만드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금속과 양모 펠트는 굉장히 먼 친척 같은 느낌이에요. 반면 동물과 양모 펠트는 가족같은 느낌이고요.

금속과 양모 펠트는 그냥 남이에요. (웃음) 양모 펠트를 사용한 첫 번째 이유는 만들기 쉬웠고 표현하기에 가장 이질감이 없는 소재였기 때문이에요. 또 금방 손에 익숙해졌고요.

그녀는 재료 이야기가 시작되자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곧 예쁘게 장식된 액자 속 이면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답이 빨리 나오는 것 같아 조용히 듣기로 했다.

재료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항상 같은 대답을 해요. 저는 거리로 나가 동물을 보호하자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가 없어요. 동시에 그렇게 외치려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제가 사용하는 소재는 양모잖아요. 굉장히 아이러니한 거죠. 작업하는 동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요. 그리고 제 자리에서 작은 것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거죠. 옷을 살 때 소재에 대해 고심할 것,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을 사용할 것. 자연의 섭리대로 필요한 만큼 재료를 얻고 편안하게 방목하면 좋을 텐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요. 유명한 메리노(merino) 양모도 착취로 얻어지거든요.

내면의 이야기를 모르고 작업을 봤을 때 예쁘지만 애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나 봐요.

일부러 표정을 넣지 않았어요. 대부분 예쁘다고만 해요. 보는 사람에 따라 차이도 크고요. 결국,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에요. ‘귀엽다.’ , ‘예쁜 액자 안에 들어 있구나.’ 이런 식으로요.

어제는 늦은 밤에 컴퓨터를 통해 반복적으로 장신구를 들여다보는데 어느 순간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기억하기 위한 영정 사진’의 느낌도 들더라고요. 너무 늦은 시간에 봐서 그랬나 봐요.

예전에 영정 사진처럼 작업한 것도 있었어요. 하다 보니 지나치게 직접적인 것 같아 그만뒀지만, 기본적으로 여러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거죠. 순수한 마음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구매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고요.

그렇죠. 인테리어 효과도 있고요. 그런데 첫 번째로 다가가는 목적은 그들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태초의 모습이요. 인간 앞에서 초라하지 않고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모습. 그것을 무겁게 표현하고 싶지 않았어요. 폭력적이고 잔인한 사진을 보여주면서 동물 학대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회유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대한 주제로 논문을 썼을 때 그녀는 수많은 동물 학대 영상과 사진을 접했다. 토끼와 오리의 털이 착취당하고 화장품 실험을 위해 희생되는 잔인한 광경들. 보기 싫었지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하며 봐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친구들에게 그런 영상을 보여주면 반응은 똑같아요. 손으로 눈부터 가리고 안보겠다고 해요. 그런데 직접 봐야 알 수 있어요. 우리가 왜 화장품을 가려서 써야 하고,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요. 가죽 재킷 예쁘죠. 퍼(fur)로 된 옷이 얼마나 따뜻한데요. 그런데 알고 나니까 확실히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표현하는 작업을 통해서 좋은 매개체가 되길 바래요.

누군가는 거리로 나가 당장 그만둬야 할 것들에 대해 소리쳐야 한다. 반면 누구나 그렇게 외칠 필요는 없다. 본인의 자리에서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하는 때가 있다. 그녀는 자신이 지킬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동물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양모로 묘사하기 적합한 것을 골라요. 재료에 걸맞는 털을 가진 동물이요. 털이 긴 동물은 표현하기가 어려워져요. 한끝 차이로 인형처럼 느껴지거든요. 털이 없는 아이들은 스컬피라는 재료를 사용하고요. 돼지나 코끼리처럼요.

하나의 장신구가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걸리나요? 금방 완성될 것 같지 않아요.

반복적으로 작업했던 토끼는 익숙해져서 금방 만들어요. 금속 부분을 제외하고 펠트 부분만 하루 정도면 완성해요. 크기가 더 큰 곰이나 기린은 조금 더 걸리고요. 대략 이틀 정도. 만들다 보면 인상이 제 마음대로 나오지 않을 때가 있어요. 눈, 코, 입이 있어서 그런가. (웃음) 물건이 아니니까요. 못된 표정으로 나올 때도 있어요. 못생겼거나. (웃음)

그 당시 심경이 반영될 수 있겠어요. 화난 상태에서 만들었다거나.

수정이 잘 안 돼요. 망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해요. 예전에 만들었던 것 중에 어미 사자가 아기 사자를 핥아주는 모양의 장신구가 있어요. 구매하고 싶다는 분이 많아서 여러 개를 만들었는데 만들 때마다 걱정인 거에요. 처음 표현했던 따뜻한 느낌이 잘 살아야 하는데 잘 안될까 봐요. (웃음)

만들 때마다 그런 긴장감이 있겠어요.

어떻게 보면 느낌인 것 같아요. 동물 모양 장신구를 산다기보다 그 동물이 가진 느낌을 사는 것 같아요.

그동안 주로 전시를 통해서 소개되었다면, 소생공단을 통해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첫 번째 통로인 셈인데요. 걱정되는 부분, 기대되는 부분이 있으세요?

최대한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분들이 모두 전시에 오신다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녀는 열 세 살이 된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얌전해졌지만 활기차서 미웠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평생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 소중할 수밖에 없다. 누구나 한 번쯤 인간이 채워주지 못하는 감정을 동물에게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로를 받는 순간 말이다. 잔인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좋은 매개체가 되는 것. 그녀가 여러 번 반복했던 이야기가 주위를 맴돌았다.

알고 나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는 말이 자꾸 생각나네요.

누드 시위를 할 수는 없잖아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대단한 용기죠.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사명감이고요.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 같으니까요.

전 정말 일반적인 사람이거든요.

서예슬은 예뻤다. 마음도 고와서 그녀의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 그녀가 투영된 것 같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깔깔거렸다. 그리고 종종 눈물을 훔쳤다. 이야기의 큰 주제는 동물이었고 서예슬도 나도 그들과 아름답게 공존하는 방법을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어디선가 그녀의 장신구와 마주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몇몇은 예쁜 장신구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칠 것이다. 부디 그들 중 몇몇은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서예슬이 바라보는 가장 이상적인 공존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글 이원희 · 사진 김규식


Comments

“서예슬, 공존한다는 것” 에 하나의 답글

  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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