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익, 손끝으로 계속 매만지면 가죽에 무언가가 담긴다

한규익은 서른다섯 살의 잘 웃는 남자다. 흰 피부와 부드러운 눈웃음 때문에 두세 살은 어리게 보인다. 머리를 깔끔하게 다듬고 몸에 잘 맞는 멋진 옷을 입는다. 저녁의 홍대 앞이나 강남역에서 흔히 볼 수 있을 것 같은 스타일이다. 기타 하나쯤 둘러메고 친구들과 깔깔대면서 밤의 거리를 걸어가거나, 술 취한 친구를 부축하고 새벽 벤치에 앉아서 어깨를 토닥이며 첫차를 기다릴 것 같은 인상이다.

하지만 한규익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에 그는 가죽 가방을 만든다. 삼선교의 한 골목에 있는 낡은 양옥집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아침 아홉 시 반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바느질을 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가죽을 마름질하고, 금붕어 먹이를 주고, 다시 바느질을 한다. 집은 작업실 바로 옆이다. 하지만 쉴 때도 집에 가지 않고 작업실에 누워서 쉰다. 가방을 만들지 않을 때는 가방의 패턴을 그리거나 라벨을 디자인하거나 전시를 구상한다.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골목길을 가볍게 산책하는 것이 여가의 전부다. 휴대폰은 오후에만 잠깐 켜놓고 대개의 시간에는 꺼두거나 받지 않는다.

내가 들고 싶어서 만든 가방

왜 가방을 만드시게 됐나요? 

사실 처음에는 제가 들려고 가방을 만들었어요. 마음에 드는 가방이 없어서(웃음). 그게 바로 이 디자인이에요(사진) 저는 원래 대학이랑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했고, 지금도 국민대에서 금속공예를 가르치고 있어요. 작업도 하고요. 사실 대학원에서 들은 수업 중에 다른 소재와 금속을 함께 써서 결과물을 만드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러고나서 남은 소재로 이 가방을 만든 거죠. 그렇게 완성을 하고 나서, 아는 누나가 압구정에서 주얼리샵을 했는데, 한켠에 자리를 얻어서 이 년 동안 가방을 만들었죠. 그렇다고 해서 판매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어요. 제가 정식으로 가방을 배운 게 아니라서요. 그래서 2년 동안 시장 돌아다니고 공장 돌아다니고 기법 연구하고 하면서 가죽을 공부한 거죠. 

그리고 칠 년이 지났다. 한규익은 시장과 공장을 돌아다녔고, 가방 만드는 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손을 바늘에 무수히 찔려 가면서 가방을 공부했다. 유학을 가서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예가 한규익의 눈은 날카로웠고 손은 정밀했다. 재료의 물성에 대한 이해와 조형적인 감각은 분명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지금 백화점의 팝업 스토어 등에서 팔리는 한규익의 가방은 인기가 좋다. 프라다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의 핸드스티치 라인에 비해 소재나 바느질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실제로 쓸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가방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저는 금속공예도 실제로 쓸 수 있는 것들을 주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더 많이 쓰게 돼요. 미적으로 봤을 때도 외양이 새롭고 예뻐야겠지만, 쓸 때 불편하면 가방으로서 기능을 다할 수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 가방을 만들다 보면 저는 손잡이가 제일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손에 잡았을 때 느낌도 좋아야 하고, 편해야 하고, 어깨에 멜 때 덜 미끄러져야 하고 그러죠. 모양도 모양이지만 쓸 때 좋아야 가방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수 있는 거니까요. 

금속을 잘 알기 때문에 아직은 가방에 금속을 사용할 수 없다

만드신 가방이 아주 가볍다고 들었는데, 가볍게 만들려고 따로 노력하시는 건가요? 

일단 제 가방을 보시면 금속 부품이 거의 없어요. 다른 브랜드 가방을 보시면 금속 판에 로고를 새겨서 박는다거나 장식을 단다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금속을 거의 안 쓰면서 작업을 해요. 그런 것들이 가방의 무게를 상당히 가볍게 하죠. 

금속공예를 하셨는데 오히려 금속을 안 쓰시네요? 

사실 지금 유통되는 금속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요. 모양도 모양이지만 도금이라든가, 소재의 완성도가 떨어져요. 대량으로 생산해서 만들면 그런 부품들도 도금이나 가공을 개선해서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직은 힘들죠. 그리고 저는 주로 핸드 스티치(손바느질)로 작업을 하는데, 아직 손으로 만든 가죽의 느낌과 금속의 광택이 잘 안 맞는 거 같아요. 물론 나중에는 금속 부품도 직접 만들고 깎아서 광택이나 형태를 제 가방이랑 잘 어울리게 할 거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일단 가방에 집중하고 있어요. 또 제 가방을 사주시는 분들이 주로 여성들이시고 근력이 약한 분들이 많으셔서, 일단은 금속 없이 가고 있어요. 

손으로 가죽을 수없이 더듬으면서 바느질을 한다 그러면 가방에 무언가가 담긴다

한규익은 기계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핸드 스티치만으로 가방을 만든다. 사실 가방에 있어 수작업의 경계는 모호하다. 컴퓨터 자수를 놓거나 미싱을 사용해서 손으로 만든 가방도 수제 가방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규익은 미싱은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바늘을 한 땀 한 땀 가죽에 꽂으며 가방을 만든다. 미싱으로는 한규익의 가방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없다. 즉 바늘땀을 비우거나 돌려감기를 한다거나, 구석구석을 바느질로 마감하는 것은 오직 손으로만 가능하다. 

그래도 미싱을 쓰는 게 더 정밀하지 않나요? 

한규익은 웃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손을 넣을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미싱이 할 수 있는 걸 전부 손으로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손바느질을 하다 보면 계속 사람의 손끝으로 가죽을 만지게 되거든요. 그리고는 만지면서 가방의 느낌이나 형태를 잡아가게 되는데, 기계로 하면 그냥 드르륵 박아버리게 되잖아요. 이편이 딱 떨어지는 형태를 잡기는 오히려 쉽겠죠. 그런데 손끝으로 계속 가죽을 만지면서 만들면, 거기에 뭔가가 ‘담기는’게 아닌가 싶어요. 

같은 가죽 원단이라고 해도 손끝으로 만져 보면 느낌이 다르다. 예를 들어 옆구리에 가까울수록 부드럽고 등으로 갈수록 단단하다. 심지어 같은 부위라고 해도 미묘하게 조밀한 부분과 성긴 부분이 있다. 한규익은 가방을 만드는 동안 계속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가죽의 조직을 읽어낸다. 그리고 바느질을 할 때나 가공을 할 때 가죽의 그런 성질을 최대한 이용하려 노력한다. 그러므로 바늘이 균일한 간격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가죽에 맞게 들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같은 원단에서도 손잡이를 달거나 가방의 형태를 지탱하는 부분은 좀 더 단단한 부위를 사용한다. 몸에 닿는 부분은 좀 더 부드러운 부위를 사용해서 섬세하게 작업한다. 

가죽 작업이 고되다고 말하는 사람은, 더 힘든 걸 경험해본 적이 없으셔서 그래요

한규익은 경북 봉화 출신이다. 원체 시골에서는 뭐든지 만들어서 쓰잖아요. 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그럴 리 없다. 시골에도 손재주 없고 게으른 사람은 있을 것이다. 한규익은 어렸을 때부터 의자며 가구, 개집, 썰매 같은 건 다 만들어 썼다고 한다. 

한번은 짤순이 탈수기를 뜯어서 도자기 성형하는 물레를 만들려고 한 적도 있어요. 

그걸 어떻게 만들어요? 

그냥 어찌어찌 만들었어요. 조립해서 완성하는 데까지는 성공했는데, 만들고 나니까 축이 안 맞아서 물레로 쓰지는 못했어요. 탈수기라는 게 원래 축이 흔들리게 되어있더라고요. 

아니 근데 물레를 만들어서 도자기를 만들면 가마에 굽거나 해야 하잖아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죠. 

나는 지금까지 남자 고등학생이 도자기 만들겠다고 탈수기를 뜯어서 물레를 만들 생각을 한다는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남자 고등학생이란 대개 인간보다는 오랑우탄이나 승냥이에 가까운 생명체들인 것이다. 오로지 고등학생 한규익만이 도자기를 빚고 싶어서 탈수기를 뜯었던 게 아닐까? 만든 다음에 그 도자기를 굽는 문제 같은 건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고등학생이 자라서 매일매일 가죽을 손끝으로 매만지며 바늘을 꽂는 사람이 되었다. 어딘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규익은 가죽 작업이 고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더 어려운 경험을 해본 적이없으셔서 그럴 거라며 웃었다. 그는 지금도 금속공예 작업을 한다. 일 미터가 넘는 쇠를 단조해서 가구를 만들기도 했고, 금속을 정밀하게 깎아서 움직일 때마다 색깔과 형태가 변하거나 소리가 나는 신기한 요요를 만들기도 했다. 제가 아니면 특정 금속공예 분야의 명맥이 끊겨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서요, 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표정에는 어떤 자만도 허세도 없어 보였다. 

가죽과 금속의 물성은 완전 정반대죠. 그런데 칼로 자르면 잘리는 소재로 작업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편한 일인데요. 

한규익은 다시 한 번 웃었다. 

한규익은 가방 한 개를 만들기 위해 삼사 일이나 일주일 정도 내내 가죽을 만지면서 바늘을 꽂는다. 한규익은 자신의 가방 가격을 지금보다 더 많이 올리지는 않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방 한 개를 만들기 위해 한규익이 지불해야 하는 노동의 양을 생각한다면, 나는 한규익의 가방은 앞으로 좀 더 비싸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아마 한규익은 계속 가방을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한규익의 초기작들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글 김현호 · 사진 김규식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