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은, 강철의 여인이 강철의 여인에게

그녀는 대장장이다. 한 손에는 망치, 다른 손에는 정을 들고 한없이 금속판을 때려댄다. 정의 머리가 버섯처럼 구부러지고 몽당해져서 손에 잡을 수가 없게 될 때까지 그녀는, 마음은 내려놓고 손과 몸이 마치 춤을 추듯 리듬을 타며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채 때리고 때리고 때린다.

수만 번 금속을 내려친 끝에 그녀가 얻어내는 것은 꽃이다. 조금 더 정확히 얘기하면, 강인하고 화려하며 오묘한 힘을 뽐내는 꽃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꽃의 인상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보통은 가녀리고 애잔하다고 해야 하나, 꽃은 예쁘지만 약한 것이라고들 생각하죠.

꽃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점들을 알게 돼요. 꽃도 오랜 세월 진화해 오면서 형태가 많이 바뀌어 왔다고 해요. 옥수수 수염이 왜 그렇게 자라는지 아세요? 꽃가루를 잡기 위해서래요. 그리고 꽃술 안의 주름이나 빗살무늬도 수분을 할 수 있는 면적을 만들기 위해 발달하면서 구조적으로 재미있는 패턴을 만들어내게 된 거고요. 꽃은 벌과 나비가 오기만 기다리며 가만히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그렇다고는 해도, 능동적인 의미를 표현하고 싶었다면 꽃 말고도 다른 주제가 많지 않았을까요?

동물은 본성 자체가 적극적이라고 보이죠. 식물은 땅에 박혀 있으니 수동적이라고 여겨지고요. 하지만 식물도 은밀하지만 적극적으로 진화해 왔다는 감춰진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비유하자면 여성들도 자기가 원하는 걸 움켜잡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거에요. 세상과 소통하고 생존을 지향하는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과연, 여자면서 대장장이인 사람이 가질만한 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녀는 어떻게 해서 망치질을 직업으로 갖게 된 걸까. 처음부터 대장장이가 될 결심을 하진 않았을테니 말이다.

망치질을 목표로 둔 적은 없죠. 일을 하다보니 길이 생겨 그 길을 따라서 온 것 같아요. 제 작업은 체이싱, 우리말로는 돋을새김이라고 하는 기법이에요. 이 자체는 아주 단순해요. 전통적인 장인들은 바위 같은 질감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게 써 왔죠. 그런데 또 그렇기 때문에 크게 발전이 있었던 기법도 아니었어요. 부분적으로 얕게 새기는 표면 장식 기법이었죠.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서 신기한 작업을 의뢰받게 됐어요. 실제 크기의 차를 금속판으로 30대나 부조로 만들어 설치하는 거였죠. 과거에는 실제로 판금과 용접으로 차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시대를 기념하는 거였는데, 남아있는 차도 별로 없어서 사진만 보면서 망치로 두드려서 2년이나 만들었죠. 그렇게 하다보니 망치질에 겁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장신구에 체이싱을 응용해보게 됐고, 장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사실 어떻게 보면 금속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진 않아요. 제가 받은 첫인상은 색이 참 곱고 예쁘다는 거였고, 신비로운 자연의 숨겨진 자태랄까, 어쨌든 재료 자체가 바로 눈에 들어오지는 않거든요.

마지막 단계에서 도자기에 색을 입히는 안료를 수차례 덧칠해준 후에 저온에서 구워내요. 그래서 색은 아름다워지면서도 표면 강도는 아주 높아져요. 장신구는 일상에서 착용해야 한다는 게 저에겐 아주 중요해요. 금속이 좋은 점은 부서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무거울 수 있는데, 저는 돋을새김을 발전시켜서 아주 가벼우면서도 튼튼하게 만들어요. 관리도 편하구요.

사실 보이지 않는 과정이 많은 작업이에요. 원하는 부분만 변형시킬 수 있는 감탕이라는 보조재를 쓰는데, 제가 원하는 강도를 맞춰야 해서 토분과 송진을 섞어서 직접 천연 감탕을 만들어요. 열로 감탕을 녹여 판을 붙이고 식어서 굳기를 기다린 후에 성형 작업을 하고 떼기를 수차례 반복해야 해서 시간이 많이 걸려요. 끊임없이 망치와 정을 두드려야 하니 손에 전달되는 진동으로 인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구요. 하지만 주물 작업에 비해 무게를 확연히 줄일 수 있고 섬세한 질감 표현이 가능해서 장신구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금속이지만 차갑게 느껴지지 않는 거였군요.

저는 자연의 한 조각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니까요. 그건 타인의 삶에 온기를 더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차갑고 딱딱한 금속판이 저의 감성과 노동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면서 마침내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는 걸 보면서, 정말 기쁨을 느껴요. 자연이 나에게 그러하듯 내가 만든 물건들이 누군가의 숨 쉴 틈이 되고 그걸 보는 또다른 누군가에게도 뙤약볕 속 잠깐의 나무그늘이 되기를 바라죠.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은 힘을 나누고 싶어요.

그녀에게는 수많은 망치들이 있다. 그 하나하나가 조금씩 용도가 다르고, 대부분 직접 손잡이를 조금씩 깎아내어 그녀의 손에 맞추어 놓는다. 단순하고 우직하며 원초적인 이 도구로부터 그녀는 그 정반대의 세계, 애틋하고 섬세하며 복잡한 물건들을 탄생시킨다.

그렇게 그녀의 꽃들 뒤에는 고된 노동, 엄청난 망치질이 가려져 있지만, 어쩌면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나도 그녀도 안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가슴에 꽃을 달고, 환하게 웃으며 또다른 인생의 하루를 맞이하러 나가는 것이 옳다. 그것이 머리를 질끈 묶고 눈물겹게 일하는 수많은 날들에 대한 경의일지도 모르니.


글 이정혜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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