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 금속이 따뜻하다

이제 갓 서른. 대학원생. 180cm를 훌쩍 넘는 호리호리한 체형. 야구 모자와 뿔테 안경. 피어싱 여러 개가 올망졸망하게 걸린 귀. 예상보다 많이 젊고 기대만큼 몹시 상냥한 금속공예가 김현성. 뭐랄까, 남성 잡지 정기구독자 같은 인상인데 말문을 트니 반전이다. 느리고 순한 말투, 서울내기인데도 고향이 서울이 아닌 것 같은 사람. 고향 서울에 되려 갑갑증을 느끼고 시골에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 명절 때마다 전라도 무안에 있는 큰집에 내려가는 걸 행복해하던 아이. 아직도 큰집에 내려가 개, 닭 등을 돌보는 게 즐거운 청년. 유년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 작업으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대장장이. 자신의 작업처럼 동글동글하게 생긴 이 젊은이를 한양대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기꺼이 더러워지는 작업자의 손

김현성의 아버지는 금속 세공사다. 종로 3가 금은방 거리에서 흔하게 살 수 있는 장신구와 예물을 만든다. 금속을 다루는 일은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무척 위험하다. 강하고 단단한 금속을 사람의 의지대로 자르고 휘고 붙이고 모양내려면 상당한 완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불에 데이거나 도구에 찍혀서 손이 남아나지 않는다. 어린 김현성은 아버지가 하는 이 위험천만한 작업이 궁금했다. 또래 친구들이 도색 잡지, 게임, 연예인에 호기심을 보일 때 김현성은 무겁고 뜨거운 도구들 앞에 앉았다. 줄질과 땜질을 놀이처럼 하던 소년과 소년의 누이는 자연스레 금속공예과에 진학했다. 얼결에 달궈진 은을 손으로 잡다가 살에서 떨어지지 않아 애먹던 소년의 길고 예쁜 손가락에 덕지덕지 두텁게 얹혀진 때가 365일 가실 날이 없다. 그의 손은 멀끔한 인상과 달리 투박하다. 누가 보아도 작업자의 손이다.

졸업 전시 때 판매가 이뤄지는 일이 흔하지 않은데, 졸업 작품이었던 외눈박이 반지 ‘멀바’가 꽤 팔렸어요. 다른 사람이 기꺼이 돈을 지불해 내 작업을 구입한다는 사실이 많이 신기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네? 내가 잘하는 건가?’ 좀 더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서서 대학원까지 갔죠.

그는 대학에서 ‘제2의 아버지’라 생각하는 고보형 교수를 만났다. 작업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까지 그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고보형 교수를 내심 ‘제2의 아버지’라 생각한다. 세상이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며 갈팡질팡하고 있는 청년 김현성에게 나침반이 된 준 사람이 고보형 교수다. 그는 스승으로부터 금속공예의 ‘정석’을 배웠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직 망치질만으로 금속 판을 구부리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가 고수해온, 금속을 다루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방식이다. 기본을 지킨다. 이 단순한 원칙 때문에 그의 손은 매일 기꺼이 더러워진다.

상처와의 싸움, 망치질

학교 구석에 자리 잡은 그의 작은 작업대 주변에는 그가 만들고 있거나 이미 만든 샘플 작업이 널려 있다. 컵을 하나 집어 들어 두 손으로 감싸 본다. 포근하다. 잡기 딱 좋은 크기다. 식기, 조리 도구에는 바로 사람의 입과 손이 닿는다. 촉감으로 감지되는 미세한 수치 변화에 따라 불편해지고 편해진다. ‘한 끗’ 차이다. 김현성이 만든 물건은 손으로 잡는 순간, 입에 닿는 순간 몸으로 전달되는 느낌이 편안하고 부드럽다. 물건이 따스하게 몸에 감긴다. 수저의 두께, 인퓨저의 꺾이는 각도 등을 보면 김현성이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 신체에 닿는 느낌을 고려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손으로 만지는 제품이니까 당연히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그걸 고려했을 거예요. 의식해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스레 나온 거예요. 이렇게 대답하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네요.

그는 민망해하며 솔직하게 대답한다.

어린 시절에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어요.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거든요. 다른 사람이 내가 만든 음식을 맛나게 먹어주는 게 좋았어요. 요리하면서 자연스레 조리 도구에 관심이 생겼어요. 만들다 실패한 제품을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정말 못 만들었지만 좋아요. 서투른 망치 자국이 그대로 드러나거든요.

서투른 망치 자국이라니, 그건 대체 뭘까?

금속 공예는 상처와의 싸움이에요. 망치로 금속을 내려치면 표면에 망치 자국이 남는데, 매끈해 보이기 위해, 상처를 지우기 위해, 상처와 길고 긴 싸움을 하는 거죠. 엄청난 양의 망치질을 해요. 가령 광 나는 주전자를 만들려고 하면 일단 망치질로 금속판에 남아 있는 망치 자국을 없애고, 줄질로 접질을 없애고, 12단계의 사포질을 거쳐야 해요. 고된 작업입니다. 지금은 망치질을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만족스럽게 컨트롤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어요. 망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서투르고 벅찬 작업이었죠. 그래도 처음 금속 공예를 하던 때의 모습이 보이니까 좋아요. 초심도 떠오르고.

흔히 공예가가 망치를 그냥 두드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랜 시간 들여서 몸에 익히다 보면 이런 강도, 이런 각도에서 어떻게 내려치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누적된 경험으로 터득한 기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건 몸이 기억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금속은 어떻게 따뜻한 물건이 되는가

커피를 좋아하는 김현성은 플라스틱 드리퍼를 오랫동안 사용했다. 구리 드리퍼를 사고 싶어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아뿔싸, 너무 비쌌다. 직접 만들기로 했다. 무식하고 용감하게 도전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바리스타 친구를 섭외했다. 그릇처럼 만들면 될 줄 알고 무턱대고 진행했는데, 드리퍼 옆면에 리브(물이 빠지는 얇은 골)를 내야 했다. 덧대어 붙이는 작업에 지칠 때쯤 금속 판을 말아서 봉합하는 방법을 찾았다. 구리 드리퍼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일정 온도를 유지한다. 구리 드리퍼가 다른 재질의 드리퍼보다 비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다. 김현성은 부식 방지를 위해 드리퍼 안쪽에 주석 도금과 주석 땜을 한다. 몽글몽글 땜질 자국이 거칠게 남아 있다. 작업 과정이 그대로 보이는 질감이다. 기계가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손의 흔적이다.

구리는 스테인리스보다 더 빨리 산화되거든요. 매일 세척하고 물기를 닦아줘야 해요. 외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고요. 대신 항균성이 뛰어나고 열전도율이 높습니다. 뭔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로 구리를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구리가 주는 따뜻한 느낌이 좋아서 그래요.

금속에 대한 일반적인 선입견은 차갑고 날카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현성의 작업은 따뜻하다. 금속이 따뜻하다? 구리의 붉은 색감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동글동글한 형태가 상상력을 톡톡 자극한다. 김현성이 만든 구리 드리퍼, 접시, 티스푼은 남몰래 나에게 말을 걸 것 같다. 우리끼리만 남겨졌을 때. 그러다 누군가 나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순간 무생물로 변신할 것 같다.

맞벌이 부모님 아래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잦다 보니 외로움이 많은 아이였어요. 대화할 수 있는 사물을 직접 만드는 과정을 통해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은 연애, 운동, 게임 같은 걸로 시간을 보내고 에너지를 쏟는데, 나는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던 거죠. 장신구 작업을 할 때는 외계 생명체 상상을 많이 해요. 이 물건이 친구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계속 개를 키울 만큼 동물을 좋아하는데, 생명체만 갖고 있는 촉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생명체의 이미지나 형태가 제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차가운 무생물이 아니라 따뜻한 애완물을 만드는 김현성. 그는 앞으로 육아 때문에 잠시 금속 공예 일을 그만둔 누이와 함께 대중적인 금속 공예 브랜드를 출시하는 게 꿈이다. ‘쓰담쓰담’ 해주고 싶은 그의 제품이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며 다가올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다.


글 임나리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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