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 같은 물건. 안경은 나에게 딱 그런 존재였다. 매일 아침, 더듬거리며 안경을 찾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째. 콘택트렌즈나 안경 없이는 불과 몇 미터 앞에 있는 친구의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니 공기 못지않게 중요한 물건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경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거의 ‘無’에 가까웠다. 두꺼운 알을 끼운 내 안경은 이미 스타일과는 무관한 의학용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내 마음을 흔든 안경이 등장했다. 두꺼운 렌즈를 넣어서라도 그 안경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단순하면서도 위트 있는 디자인, 온전히 손으로 시작하고 마무리한 제작 공정, 완성품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지는 제각기 다른 모양새는 안경점에 열을 맞춰 누워있는 기존의 안경과는 확실히 달랐다. 마케팅 비용이 대거 포함된 고가의 명품 아이웨어 브랜드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정체성도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수작전(手作展)’이라는 수공예 안경이었다. 일부 핸드메이드 제품에서 느꼈던 억지스러움, 그러니까 정성스러운 수제품이라는 점을 무기 삼아 조악한 디자인과 마감을 견디라고 이야기하는 듯한 불편함이 수작전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정성스러웠지만 부담스럽지 않았고, 특별했지만 유난스럽지 않았다. 

그러한 브랜드의 힘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디자이너 김종필의 역할이 컸다. 그는 안경원 소나기와 스팀의 디자인 디렉터였고, 에이쓰리프로젝트, 컬러라운지, 이스턴 빌리지 등의 아이웨어 브랜드를 만들었으며, 손으로 깎아 만드는 핸드메이드 브랜드 수작전을 구상하고 실현한 장본인이다. 김종필은 안경 디자인이라는 개념조차 미약하던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안경을 매개로 호흡하고, 또 꿈을 꾸어온 1세대 안경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손으로 생산하는 일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원래부터 손으로 만들고 이러는 거 좋아했던 놈이니까.” 

유전자 때문일 것이라 그는 말했다. 어린 시절 그의 눈에 비친 아버지는 항상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계셨다. 사춘기였던 중학교 때까지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옷을 입고 자랐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어린 김종필의 취미는 <아카데미 과학> 조립제품 만들기였다. 그림 그리고 만들기를 좋아했던 김종필은 자연스럽게 금속공예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깜짝쇼’ 같은 작품을 하고 싶었던 그에게 금속공예의 길고 고된 작업의 과정들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한 달 내내 사포질하는 정성과 장인정신을 지니기에는 그는 너무 에너지가 많았고, 아이디어가 넘쳤으며, 참을성이 없었다. 

군 제대 후 복학해서 여전히 금속공예과에서 떠다닐 무렵, ‘안경’이라는 오브제와의 필연적인 운명이 시작되었다. ‘서전안경’에서 실시한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2년에 걸쳐 연속 수상을 한 덕에 그는 IMF로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아주 쉽게 취업의 돛단배를 탔다. 입사 후 일이 너무 재미있어 그야말로 새벽에 문 열고 출근해서 자정 가까이 문 걸고 퇴근하는 생활을 몇 개월간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디자인에 관한 피드백이 빨리 온다는 점이었다. 서울에서 디자인 도면을 그려서 정읍에 있는 공장에 내려보내면 며칠 후 바로 샘플 작업을 받아볼 수 있었다. 일하는 것이 재미있으니 결과물에 대한 양과 질도 폭발적이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미친 듯이 디자인을 하다 보니 전반적인 안경 디자인이나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가 궁금해졌어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를 보고 나면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죠. 불현듯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해졌어요. 그래서 회사에 건의했죠. 외국 페어들을 볼 수 있게 출장을 제도화해 달라고. 제가 아니라 선배들을 말이에요. 그래야 제 차례도 오는 거니까요.” 

김종필의 의견은 합당하고 논리적이었지만 조직의 질서 안에서 그의 발언들은 호의적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어쩌면 에너지 넘치고 바른말만 하는 후배가 그들은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결국, 그는 1년여 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이후 여러 안경 관련 일들을 하던 중 ‘디자인샤우어’라는 회사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2003년, 안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스토리’라는 홈페이지를 오픈한다. 판매를 위한 쇼핑몰이 아닌, 세계의 안경 트렌드, 외국의 유니크한 안경들을 소개하고 이것에 대한 리뷰를 하는 곳이었다. 안경을 공부할 목적으로 만들었던 이 홈페이지는 입소문을 타고 ‘선수들’ 사이에서 꽤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쇼핑몰을 만들자는 투자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김종필은 인터넷 쇼핑몰에 관한 선입견이 있었다. 인터넷 판매가 가격을 무너뜨려서 전체 업계를 망친다는 인식이었다. 또한, 가상의 공간에서 사진만 보고 물건을 사는 것에 관한 반감도 있었다. 결국, 모든 제안을 거절한 채(그는 선견지명이 없었던 자신의 선택을 몹시 아쉬워했다) 안경에 관한 사랑과 지식만 오롯이 남은 이상향 같은 아이스토리를 지속했다. 중간에는 파피루스라는 안경 전문점에서 디자인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며 다양한 업계 동향을 공부하고 시야를 넓히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파리와 밀라노, 일본, 중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페어에 참석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페어를 참관하면서 흥미롭고 새롭긴 했지만 ‘이게 뭐야,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건방진 생각이 더 컸어요.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머릿속에 안경이라는 것이 꽉 차 있었을 때니까요. 하지만 세계적인 동향이나 취향의 흐름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죠.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이런 것을 준비하면 되겠구나,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어요.” 

김종필의 삶은 ‘안경’을 주제로 하나의 서사를 형성하고 있었다. 안경과 처음 인연을 맺은 서전안경에서는 상업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을 경험하며 기초 단계를 밟았고, 파피루스에서는 다양한 취향, 그리고 그 취향들이 조화를 이루며 돌아가는 전체적인 흐름을 목격했다. 아이스토리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는 독특하고 다양한 전 세계 안경들을 보며 자기만의 관점으로 디자인을 비롯한 제품의 특성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안경에 관해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이러한 사유의 흐름에 맥을 같이한 다양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때 만들어진 네트워크는 이후 다양한 행보에 결정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러한 과정들을 거쳐 지금은 황성원 작가, 금속공예가 한주영 작가가 함께 수작전의 제품들을 기획하고 손으로 깎고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원재료인 아세테이트를 고르고 디자인한 모양새를 만들고 깎아 내는 것, 그렇게 형태를 지닌 안경의 가장자리를 다듬어 매끄럽게 만들고 조립하는 것, 그리고 알맞은 균형감을 찾아내 피팅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손끝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된다. 핸드메이드 제작방식을 통해 유일무이한 나만의 안경을 가질 수 있다는 매력으로 수작전은 유명인사들이나 안경 애호가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왔다. 

요즘 그는 컬러의 확장성을 지니고 있는 소재 찾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 안경의 흐름이 아세테이트, 플라스틱을 소재로 바뀌는 이유도 다양한 컬러를 넣을 수 있는 여지 때문이라 그는 말한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길 바라는 것은 아니다. 컬러에 대한 한계성이 강한 금속 소재로는 아예 더 금속다운 접근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구상하고 있는데 학교 후배이자 금속에 전념해온 작가 한주영과 함께할 예정이다.

“대외적으로는 대량생산된 물건들 사이에서 핸드메이드가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를 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수작전은 온전히 제 개인적 동기에서 시작한 브랜드에요. 손으로 만드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고 할까요. 한마디로 유희적 목적이 강한 브랜드인 셈이죠. 주말에 남들은 낚시 다니고 그런다는데 나는 이걸 취미로 하자, 이렇게 생각하며 시작했어요. 다행히 보여줄 장소(현재 그는 인사동 쌈지길의 소나기, 홍대 놀이터 근처의 스팀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 중이다)가 있으니 그 물건들이 조금 수월하게 사람들에게 갈 수 있게 되었죠.” 

수작전의 디자인 방향은 아이러니하게도 ‘독특해서 많이 생산되지 않을 것’으로 압축된다. 대중적인 물건들은 충분히 공장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핸드메이드라는 제작방식을 취할 목적이라면 철저히 다른, 독특하고 재미있는 것들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러니까 핸드메이드는 ‘이상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그의 판타지를 실현해주기에 가장 적합한 생산방식인 셈이다. 

때문에 수작전의 안경들은 제작 측면에서 볼 때 작가의 대단한 능력이나 넘볼 수 없는 기법들로만 점철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누구라도 조금만 배우면 쉽게 아세테이트를 다루고 깎을 수 있다. 공예적 접근이나 장인정신의 발로라고 말하기에는 확실히 어폐가 있는데 오히려 이 부분이 수작전의 제품들을 매력적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일상 안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는 공예,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작점을 품고 있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생산 방식이나 재료의 다변화를 통해 가격을 점점 더 낮추고 싶은 것이 지금의 바람입니다. 핸드메이드라는 작업 방식도 그렇고, 또 대부분의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가격이 높아야 내가 더 높게 평가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전혀 다른 생각이에요. 그것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쓰고, 또 좋아해 주면 그게 더 큰 행복감을 줍니다. 좋은 디자인을 더 많은 사람이 누렸으면 좋겠어요.” 

좋은 디자인을 누리는 권리가 특정 누군가에게만 있지 않다는 그의 생각은 핸드메이드 제품들의 생산과 유통방식에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내고 있다. 안경이라는 삶의 주어를 일찍이 가슴에 품은 디자이너 김종필의 익살스러운 웃음 너머로 수작전의 새로운 국면이 조만간 펼쳐질 예정이다. 그것이 어떤 방식과 형태일지는 아직 구체적이지 않으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이 좋은 디자인을 누리게 될 거라는 점,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디자이너 김종필을 비롯한 생산자들 역시 무척 즐거워질 것이라는 점. 핸드메이드 제품이 가지는 행복이 점점 더 넓어지는 광경을 우리는 조만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글 김선미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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