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농부 박민재,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살기까지

우렁이로 벼농사를 지어 유기농 쌀을 재배하기 때문에 ‘우렁이 총각’으로 잘 알려진 젊은 농부 박민재 씨를 만났다. 그와의 만남은 상투적이지 않아 신선했고, 의외의 발언들로 인해 오랜 시간 생각하게 했다. 듣고 싶었던 말보다는 들어야 하는 말을 들었다고나 할까.

훤칠한 키에 예의 바른 태도, 하얗고 작은 이어폰이 잘 어울리는 박민재 씨는 자신이 어디서 태어나 어디서 자랐으며, 왜 그렇게 자랐는지, 지금은 어떻게 왜 그곳에서 살고 있는지를 아주 길게, 그렇지만 서둘지 않고 조금은 느릿느릿하게 이야기했다. 매스컴에서 흔히 우려먹는 ‘시골 사는 젊은 농부’에게서 나올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 나라 모든 농부 아들들의 울림이었고, 우리가 알아야 하는 진실이었다.

젊은 농부는 도시의 삶을 꿈꾸었다고 했다. 여의도의 빌딩 숲에서 하얀 셔츠에 넥타이를 맨 화이트칼라 군단의 한 틈에 끼거나, 주말엔 홍대 거리를 걸으며 음악을 듣고, 좋은 음식을 먹고 멋진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는 그런 도시에서의 삶 말이다. 그렇지만 결국 아버지의 고향에 남아 아버지의 땅을 지키고 있다. 그는 이 삶이 힘들고 고단하지만,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이기에 감당한다고 했다. 그가 왜 젊은 농부로 살아가는지, 왜 할아버지, 아버지의 땅을 저버리지 못하고 지키고 있는지, 여러분도 궁금하지 않은가.

제 3의 고향

제 고향을 어디라고 해야 할까요? 태어난 곳은 부산인데 2살 때 부모님이 생활의 터를 서울로 잡으셔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어요. 63빌딩과 쌍둥이빌딩으로 봄 소풍을 가는 보통 서울 아이처럼 말이지요. 그렇지만 제 마음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그립고 정든 고향은 장흥입니다.

서울에 살 때만 하더라도 장흥은 그저 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 혹은 아빠가 태어난 곳, 명절 때마다 교통체증을 겪어 가며 가는 곳이었죠. 가족들끼리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고, 할머니와 친척 어른들께 꼬박꼬박 용돈을 챙겨 받을 수 있으며, 강아지가 있고, 추석 때 친척 형들과 고추잠자리도 같이 잡던 곳, 어린 시절 흔히 찾는 그런 시골 말입니다. 그 시골이 바로 12살때 아버지를 따라서 낙향한 뒤로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는 제 3의 고향입니다.

오락실이 없어서 슬펐어요

12살에 장흥으로 내려왔을 때 정말 슬펐던 일이 있었는데요, 첫 번째로는 원치 않은 시골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는 워낙 손이 딸리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의 일손도 큰 도움이 돼요. 그래서 서울에서는 그저 놀기만 하던 제가 봄철 모내기 시절에는 모판을 나르고, 가을철에는 장화를 신고 아스팔트 위에 널어놓은 나락을 말리고, 가마니 포대를 잡는 일 등 이런저런 농사의 잡일을 경험하게 되었지요.

두 번째로 슬펐던 일은 장흥에는 오락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정말 슬펐어요. 물론 장흥 읍내에는 오락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마을에서 읍내까지는 대략 4km의 거리로 초등학생 걸음으로 한 시간은 더 가야만 겨우 갈 수 있던 곳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마을에는 슈퍼마켓도 없었어요. 그래서 과자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라도 사먹으려면 30분을 걸어 아랫마을에 가서야 겨우 하나를 사먹을 수 있었습니다.

오락과 만화책만 좋아하던 아이에게 농사일은 당연히 너무 귀찮고 싫은 일이 될 수밖에 없었죠. 매번 ‘나는 나중에 절대 농사를 짓지 않아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농업이 본업이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죠?

귀농한다면 뜯어 말려요

조금 현실적인 계산을 해볼까요? 처음 귀농을 하면 땅을 사야 하는데, 땅을 5만원이라고 하고 200평을 사면 1,000만원이에요. 200평 농사하면 1년에 60만원 정도 나와요. 1억을 투자하면 600만원이 나오겠죠? 대개 4만평은 넘어야 농사 좀 짓는다고 말하는데, 4만평이라 해도 연 소득은 1억이 될까 말까이고, 10만이나 12만평 정도 돼야 많이 한다고 합니다. 2만평에 6천만원이라 하면, 12만평이면 3억 6천입니다. 물론 땅값은 오를테니까 땅을 사는 것으로 했을 때, 10년, 20년, 30년 후를 생각할 것입니다.

저희 집 예를 들어볼게요. 저희 집은 쌀 2만평, 밀 2만평인데, 쌀농사2만평에선 6천만원 정도 나와요. 그런데 2만평 땅 사려면 10억이 필요하죠. 10억 사가지고 6천만원 나온다고 하면, 그냥 원룸 하나 8억 주고 지어서 세 주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 땅만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농기계도 사야 합니다. 콤바인 하나에 8천만원 정도 해요. 벤츠도 4천만원인데 기계가 8천만원이라니, 조금 더 보태서 카페 하나를 차릴 수 있는 돈이 드는 거지요. 물론 농기계를 임대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사용료로 평당 얼마씩 인건비를 줘야 하는데 종자값 빼고, 농약값 빼고 그러면 본인 인건비도 안 나와요. 카페 하나를 3,4억에 차리면 월 소득이 500만원은 넘게 나오는데, 이게 과연 수지가 맞는 일이겠어요? 만약 저한테 그렇게 시작하라고 하면 안해요. 그래서 귀농을 처음 하시는 분들이 실패하는 경우가 3억, 5억 가지고 왔다가 홀랑 까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저도 귀농 관련 책을 많이 사서 읽어 봤는데, 로망 같은 것이 많이 담겨 있더라구요. 도시생활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내려왔다가 이상을 실현하고 그런 내용들이 대부분이고, 방송에서 자주 나오는 억대 농부를 보고 시골 내려와서 산다고 하면 힘들어요. 그냥 오지 말라고 하고 싶죠. 억대 농부라고 치면 우리집도 억대 농부에요. 다만 소득이 억대가 나오지 않을 뿐이죠. (웃음)

게다가 그 중 평당 소득이 가장 낮은 것이 쌀입니다. 다른 버섯이나 특용작물을 하면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힘들어요. 흔히들 그러세요. 도시 생활하다가 힘들면 시골가서 농사나 지어야지라고 하는데, 그 말은 반대로 제가 여기서 농사짓다가 힘드니까 삼성이나 들어가야지 하는 것과 같은 말이에요. 그만큼 여기도 치열합니다.

우렁이 총각이 지은 밥맛

유기농업은 힘들고 손도 많이 가는 반면, 소득도 감소하게 됩니다. 수확량이 줄기 때문에요. 우렁이는 먹이가 없으면 가끔 벼를 먹기도 합니다. 그리고 농약을 하면 잡초가 안 생기는데 저희는 하지 않으니까 잡초가 많이 생기지요. 그래서 모든 논의 잡초들을 동네 할머니들의 손을 사서 다 직접 뽑고 있어요. 거짓 하나 없는 유기농업이라는 점이 저희 쌀의 자랑이죠.

저희도 7년 전까지는 농약을 썼어요. 그런데 농약을 쓰면 누구에게 제일 안 좋냐면, 바로 농부입니다. 피부에도 닿고, 공기로 마시죠. 그래서 아버지 건강이 나날이 안좋아지는 게 보였어요. 우리한테도 안 좋고 먹는 사람들한테도 안 좋은 거, 소득이 줄더라도 이걸로 바꾸자, 가족이 그렇게 결정했어요. 여러 친환경 농법 중에서 우렁이를 택하게 된 거고요. 우렁이는 수확을 하고난 후에 땅이 마르면 다 죽게 되는데, 그러면 다시 무기질이 되고 영양분이 되거든요. 땅에 자연의 비료를 준다는 게 좋게 느껴졌습니다.

밥맛은 쌀을 언제 도정하느냐에 따라서 맛이 결정되는데, 그날 주문 받아서 그날 도정하면 좋겠지만 저희 집이 정미소를 운영하지 않아서 매일은 불가능하고, 매주 도정해서 신선도를 더 높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로 묵은쌀을 섞지 않고 햅쌀만 합니다. 농법도 중요하지만, 섞어 팔지 않는다는 게 저희에겐 정말 중요한 원칙입니다.

5년 전부터는 검은밀 농사도 짓고 있어요. 이것도 태평농법으로 친환경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요. 검은밀을 하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먹는 법이 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요즘은 빵 만드시는 분들의 문의도 많고 해서, 가루 제품으로도 판매를 준비했어요. 저희가 생산한 검은밀의 성분 분석을 의뢰했더니, 글루텐 함량이 13.25%라서 아주 이상적인 강력분입니다. 빵 만들기에 좋을 겁니다.

내게 땅이란

제가 태어난 곳이고 또 제가 살아가는 곳이죠. 제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주욱 한결같이요. 저흰 이곳을 떠날 수도 없고, 또 떠나지도 않을거에요. 이곳에서 좀 더 힘들지 않게 살기 위한 현대적인 농사 시스템을 찾고, 그것을 적용해서 이곳 주민들이 좀 더 윤택한 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니, 윤택까지는 아니더라도 뿌린 만큼 거둬서 노동한 만큼의 보상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평범한 월급쟁이가 한 달 내내 힘들게 일하고 받는 월급과 같이 평범한 보상인데요, 이곳에서는 그런 평범한 보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결국 흙의 주인은 땅에서 농사짓고 자연에서 농사짓고 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올 한해만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닌,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농사를 지어야 하는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항상 땅이 좋아야 좋은 작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땅을 사랑하고 땅을 지키고 자연을 지켜야 하는 것이죠.

박민재 씨는 마지막에 농사가 아닌 농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가 농사짓는 땅을 넘어서 한국의 농업에 대한 고민, 농민의 삶에 대한 번민이 엿보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내 자식한테 이 고생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까, 농사를 물려주면 고생도 물려줘야 하는 것인가, 라고 그는 질문했다.

그래서 박민재 씨는 영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뜻이 맞는 친구들과 장흥 지역의 농사 관련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유통, 마케팅까지 하고 있다. 오로지 농사 짓는 것만 아는 농부가 아니라, 농사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으로 시작해 농사를 어떻게 지어야 하며 어떤 비즈니스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지, 그래서 농부는 어떻게 먹고 살 수 있는지를 해결해 나가는 방법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 태어나 시골로 간 젊은 농부 박민재 씨는 이제는 시골이라는 공간 자체를 바꿔놓는 거대한 꿈을 꾸고 있다.


글 이찬희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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