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뜨개 2.0 박혜심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바뀌는 시대지만 손뜨개의 시간은 어느 때인가 멈춰버린 것 같다. 어려웠던 시절, 손수 자녀들의 옷을 만들어 입히거나 스웨터 마감으로 몇 원의 날품을 팔아 부업으로 삼고 물건에 먼지 탈까 촘촘히 만들어 덮어놓던 생활밀착형 손뜨개. 이제 기계가 손을 대신 하는 세상, 온갖 재미난 오락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뜨개질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시대에 뒤떨어진 취미에 세련된 감각을 입히고 손을 움직이는 즐거움을 끌어내는 젊은 니터 박혜심, 그녀가 이렇게 인사하는 것 같다. “안녕하세요, 손뜨개 2.0입니다.”

어쩌다 손뜨개

뜨개질은 유독 한국에서 퇴물 취급을 받는 것 같아요. 최근에는 감각이 남다른 젊은 니터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지만, 고루하고 지루하다는 이미지가 고착된 느낌이랄까요.

서양에서는 줄리아 로버츠, 위노나 라이더, 다코타 패닝 같은 배우들이 뜨개질하는 모습도 대중화에 한몫했고요. 인터넷과 SNS의 영향으로 그런 흐름이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퍼졌는데,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젊은 니터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어요. 손뜨개도 ‘쿨’한 취미라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대중적으로 퍼져 나갈 수 있어요. 손뜨개를 필수적이고 유용한 기술로 생각하던 과거와는 접근법이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학교에서 뜨개와 바느질을 필수로 배웠던 마지막 세대 아닌가요?

맞아요. 가정시간 시험 과제로 뜨개질이나 바느질로 목도리나 앞치마 같은 걸 만들어 제출했던 기억이 나네요.

분명 높은 점수를 받는 학생이었을 것 같네요.

가정시간에 뜨개를 배울 때에는 그다지 잘하진 못했어요. 오히려 바느질이 손에 착 붙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20대가 되어서도 바느질로 인형을 만들곤 했어요.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시절 CA도 수예부였네요.

그럼 어떻게 본격적으로 뜨개를 시작하시게 된 거에요?

대학 때 전공도 도자와 애니메이션이었어요. 그런데 막연하게 뜨개에 대한 동경이랄까? 그런 애정 어린 감정이 있었어요. 바느질을 계속했지만, 어느 순간 좀 번잡하다 싶고 손뜨개가 훨씬 접근하기 쉬울 것 같더라고요. 패턴을 그리고 원단을 자르는 과정 없이 실과 바늘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잖아요. 어쨌든 둘 다 바늘이 필요한 작업이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하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심산이었다고나 할까요?

손을 움직이는 즐거움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텐데, 어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을 거 같아요.

이상하겠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강한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바로 전문가 과정을 등록했어요. 체계적이고 확실하게 배워서 뜨개 전업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 제가 수업을 하게 된 이유는 전문가 과정에서 느낀 ‘불편함’ 때문이었어요. 사람마다 만족도가 다를 수 있으니 제 기준이라는 전제로 들어 주세요. 저는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손뜨개를 가르친다면, 하고 가정을 해 보았고 머릿속에서 새로 구성을 해 보았죠. 예를 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 기법을 뜰 수 있는데 굳이 한 과정만 고집하지 않는 것, 불필요한 단계를 없애는 것 등 융통성 있게 커리큘럼을 바꿔 보았어요. 배우는 사람의 입장으로 생각해 보니 세세한 부분까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개인 작업도 멋지지만, 혜심 님은 타고난 교육자인 것 같아요. 제가 선생님의 수강생이기도 하잖아요?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앉아있는 지금이 참 쑥스럽네요.

하하하, 동감입니다. 동갑인데도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시니 감사하면서도 좀 쑥스럽고요. 손뜨개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는 실을 잡는 방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누구나 잘할 수 없어요. 그게 당연하고요. 우리가 찧고 엎어지는 실패 끝에 걸음마를 익힌 것처럼 처음이 가장 어려워요. 일단 실과 바늘이 손에 익숙해지면 재미에 속도가 붙죠. 그래서 손뜨개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어려움, 그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수업에 임해요.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성격도 좋았지만, 강압적이지 않아서 빠르게 흥미를 붙였던 것 같아요.

원하는 걸 자유롭게 만들면서 흥미를 찾을 수 있게 도와드리고 싶어요.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되 그 단계에서 익혀야 하는 기법이나 발전할 수 있는 부분들을 체계적으로 짚고 넘어가요. 주변을 보면 A를 뜨고 싶어서 갔는데 B도 아니고 E 정도를 만들어야 했던 경험, 구박당하듯 불친절한 수업을 받아 본 경험이 흔하거든요. 흥미를 붙이면 정말 뜨개질만큼 재미있는 게 없는데 좋지 않은 기억으로 그만둬 버리면 너무 아깝잖아요. 그래서 실과 바늘을 잡는 법, 뜨기의 기본을 익히고 나면 다양한 책을 보면서 뜨고 싶은 도안을 골라 함께 만들어 가요. 정해진 커리큘럼을 바꿀 수 없는 일반적인 수업과 달리 자유도가 높다고 할까요? 기호로 이뤄진 도안이 내 손으로 실제가 되는 순간의 쾌감은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몰라요. 손으로 만드는 진짜 즐거움을 경험하게 되는 거죠.

어떤 분야든 처음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는가가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손뜨개를 배우고 싶다’가 아니라 ‘이 인형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업을 만들어요. 뜨개를 기술로 본다기보다는 원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한 매체의 개념으로 보는 거예요. 뜨개질은 못하는 사람이라도 영국 니터 도나 윌슨의 작품은 많이들 알아요. 세계적으로 워낙 있기 있는 인형이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원하는 인형을 만들다 보면 뜨개의 매력에 눈뜨게 되고, 자연스럽게 배움의 욕구가 커져요. 최근 트렌드에 맞는 도안을 찾고 흥미를 이어가게 하는 게 바로 제 역할이고요.

기술보다 빛나는 감각

개인 작업도 잘 해나가고 계신데요, 어릴 적 아련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감성이 있어요.

차고 넘치는 아름답고 멋진 물건들 사이에서 제 나름의 작업 기준을 정했어요. 첫째, 뜨개실이라는 재료에 어울릴 것. 둘째, 이야기가 있을 것. 이 두 가지 요소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토끼풀 시리즈에요. 어릴 적 풀밭에서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 끼웠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고, 그 경험을 모르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알려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거죠. 뜨개 토끼풀 반지를 끼고 사람들을 만난다면 적어도 대화거리 한 가지는 생기게 되지 않을까요? 대화를 이끌어내는 뜨개랄까요.

저는 여러 가지 실을 조합해 만든 믹싱얀이 참 좋아요. 재료임에도 혜심 님의 색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엄연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믹싱얀으로 기본 뜨기만 떠도 그 완성도가 적어도 2배는 올라가 보인다는 게 매력인 것 같아요.

어떤 취미든 애정이 깊어지는 만큼 장비 욕심도 커지잖아요. 사진을 취미로 하시는 분들이 겪는다는 ‘장비병’처럼, 뜨개를 파다보면 실 욕심이 말도 못하게 커져요. 새로운 질감, 특이한 색을 찾고 찾다 직접 여러 종류의 타래실을 사다 섞어 믹싱얀을 만들게 된 거에요. 작품에 쓰고 남은 것을 판매했는데 반응이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계절별로 용도별로 제작하게 되었어요. 뜨개를 하는 데 반드시 화려한 기술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제 생각을 전달할 수 있어서, 만드는 과정은 고되지만 한 볼 한 볼 만들고 나면 뿌듯해요.

젊은 니터이신데,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어요?

보통 핸드메이드를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이라 하죠. 그런데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낸 물건인데도 아름답지 않다면 아무리 핸드메이드라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취향과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요. 제 말의 핵심은 수고를 들인 만큼 다수가 인정할 만큼 아름답고 견고한 물건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거예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즐거워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결과물이 아름답고 수익을 낼 수 있어야지 자기만족으로 그쳐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게 뜨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니까요.


글 우해미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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