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석, 내가 쓰기 위해 만들면 다른 사람에게도 갈 수 있다

2003년, 공예가 심현석을 처음 인터뷰했다.(http://earlycontents.co.kr/?p=494) 그는 손에 꽉 끼는 푸른색 고무장갑을 낀 채, 조용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직접 만든 카메라를 하나씩 설명했다. 수술대에 선 의사처럼, 조심스럽게 포즈를 잡아주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만드는 일은, 일가견이 있다는 공예가들 사이에서도 흔치 않은, 기행(奇行)에 가까운 일이었다. 

2014년, 오랜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의 야심찬 카메라 작업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십 년 전에는 카메라를 만들고 계셨지요. 그 때는 손으로 직접 카메라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별난 일로 여겨졌었어요. 

예전엔 당연히 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인데, 잃어버린 거죠. 그래서 “이걸 어떻게 손으로 만들어”라고 생각해요. 겪어보니까, 시도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예요. 작업을 하고 금속을 다룰 줄 알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 거죠. 그래서 “아 이게 가능하구나”라면서 저도 신기했었고, 사람들이 “어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라며 놀라는 반응도 재미있더라고요. 

지금의 카메라는 기술의 집합체 같은 거잖아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동원돼서, 반도체 칩도 들어가고, 일종의 결정체 같은 것이 된 거죠. 하지만 저는 아예 초기의 원시적인 모습의 카메라에 접근했기 때문에 충분하지 못한 기술에서 오는 조잡한 느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중요한 이야기로 들리네요. 수공 제작을 하더라도 부분적으로 기성 부품을 그냥 끼워 넣었다든지 그러면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손으로 만들 때의 장점을 잘 살려야 되는데, 기계 생산의 방법을 그대로 쫓아가면 그리 되는 거죠. 기계와 여러 사람의 힘으로 이뤄진 것과, 그냥 한 사람이 혼자 작업실에서 이뤄내는 것의 차이는 뭘까요. 기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술 아닌 다른 것과 싸우는 것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요즘은 카메라 작업은 안 하시나요? 

처음 만들었던 카메라는 내가 쓰기 위해서 만든 거였어요. 그런데 많아지게 되니 다른 사람에게도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가져가서 쓰는 분들이 있어요. 지금 제가 쓸 거로는 충분히 많아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지만 상황이 바뀌면 할 수도 있죠.

카메라 프로젝트를 정리해 본다면, “조금은 낯선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기계적인 사물을, 무리하지 않고 손 기술로 최대한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작업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요. 사진을 좀 더 잘 찍어보려고 렌즈나 촛점거리와 같은 문제를 고민하기도 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돌아선 때가 있었어요. 뷰파인더도 없어도 되겠다고. 이게 카메라가 아니고, 사진찍는 도구도 아니다. 조그만 상자, 그런데 내 기억을 담는 상자다. 그런 상자에 이런 복잡한 걸 집어넣으려고 계측을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함께 계시는 우진순 선생님 수업 중에 ‘선물상자 만들기’가 있어요. 나에게 선물상자는 이런 상자(카메라)였던 거죠. 셔터를 누르는 건 상자를 여는 과정이고, 그 셔터를 눌렀다 떼면 내가 보고 있는 기억들이 담기는 거고요. 물론 보통의 카메라는 좀 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쪽으로 가고 있지요. 거기서 저는 보다 감성적인 부분에 치중하면서, 그것을 오히려 상자로 단순화시킨 거예요. 

카메라 옵스큐라인가요? 카메라가 처음 생기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려요. 

아마 카메라가 처음 생겼을 때에는 사진이 나온 것을 참 신기하다고 그랬겠지요. 그러다가 급속도로 더 잘 나오게 만들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이 고민을 하고 노력을 했잖아요. 지금까지 그런 과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고요.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거꾸로 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앞으로, 어떤 사람은 뒤로도 가고, 좌로도 우로도 가는. 그렇게 함께 있는 풍요로운 사회 말이예요.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거창하게 말하면요.

그에게 카메라는 기억을 담는 상자일 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기성품과 비견되는 모습을 별다른 고민 없이 예상했던 것 같다. 그의 작업 대부분은 일상용품이고, 공장에서 만들어낸 대량생산품과의 경쟁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그는 ‘경쟁’에 뛰어든 적이 없었다. 

나의 작업이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 그런 생각도 간혹 해요. 저는 공예가라는 직업이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직업들도 있지요. 디지털화가 한창인 환경이니 더 그렇고요. 그런데 나의 몸을 둘러싸고 있는 건 그렇다고 해도, 몸 자체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아날로그한 것이지요. 그런 몸이 받는 스트레스가 정말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풀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숲 속에서 우리 몸이 안정을 취하듯이,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 토닥토닥 우리 몸을 수딩(soothing, 진정시키는)하는 걸 상상해요. 스트레스를 풀어줄 수 있는, 그런 작업이 공예가의 작업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거꾸로, 디지털의 반대로 가는 것도 좋은 방향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흔히들 배 곯는 직업이라고 얘기하는데, 안 그럴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가치있는 일이고 그걸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한눈팔지 않고 이것만 하는 이유입니다. 

복잡한 요즘 물건에 비하면 원시(原始)의 영역에 있는 물건으로 보입니다. 

내가 만들어 사용하는 과정에서 물건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어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삶 말입니다. 

예를 들면, 걸레질 엄청 싫어하거든요. 그런데 재봉틀로 뭔가를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재봉을 배웠어요. 처음에 만든 것이 뭐냐 하면, 누렇게 변한 흰 면티에 빨갛게 스티치를 해서, 예전에 학교 마루에 왁스칠을 할 때 쓰던 걸레 있죠? 그걸 만들었어요. 그런데 내가 어느새 그걸로 걸레질을 하고 있는 거예요. 걸레질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더라고요. 의미 없이 해야만 하는 과정들이 어쩌면 중요한 시간이라는 점을 물건 하나로 알게 된 경험이었어요. 걸레를 통해서도 기쁨을 얻을 수 있구나. 24시간 중에 버려질 시간,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일 수 있는 그 시간이 즐거울 수 있구나. 그런 걸 느꼈던 거 같아요. 또 요즘엔 커피와 관련된 걸 많이 만드는데, 마찬가지 경험을 하고 있어요. 소소한 즐거움이 넓어져서 풍부해지는 거죠. 카메라를 만들기 전에도, 만들 때에도 그랬고, 그 후에도 다른 작업들로 이어지고 있어요.

직접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는 과정에서 삶의 특별함을 느낀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구입해서 쓰더라도 마찬가지죠. 그런 걸 구입할 때는 보통 기성품보다 비용을 많이 지불하잖아요. 고민도 많이 해 보고요. 그럼에도 구입하는 건 정말 좋아서 그런 것이고요. 정말 좋다는 느낌으로 기분 좋아하며 쓰는 것은 만드는 거 이상으로, 내가 만든 사람이 아님에도 비슷하게 느끼는 지점이 있어요. 

물건에 영혼이 있다고 해야 하나요? 

저는 그걸 에너지라고 하는데, 만들 때 좋은 마음을 가지려고 해요. 그렇게 좋은 기분이 물건에 들어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힘든 때, 좋지 않을 때 뭔가를 만들면 그 물건도 좋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작업해야 이걸 쓰는 사람도 그 기운을 느끼며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해요. 에너지가 깃들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는 “쓰는 것은 곧 함께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시간을 두고 물건과 꾸준히 함께 호흡해야만 비로소 그 물건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뚜렷한 목적 아래 구입하고, 균일한 쓰임새를 단방향으로 제공만 하는 공산품에 비해, 소규모 생산자의 물건은 유기적으로 사용자와 반응한다. 같이 잘 살아볼 생각이 없다면 생각도 할 수 없는. 

물건을 살 때도 정말 나에게 ‘좋은’ 물건을 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오랫동안 가치를 느끼면서 애착을 갖고 쓰게 되죠. 

제가 만든 물건 중에 볼펜이 있어요. 저는 지금까지 정말 많은 볼펜을 잃어버렸어요. 도대체 이게 어디로 사라질까 궁금해 하기도 했고요. 그러다 좋은 걸 장만해서 더 신경쓰고 잃어버리지 말자고 다짐한 적도 있는데, 또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한번은 우진순 선생님이 정말 좋은 볼펜을 갖고 계셨는데, 잘 써보라면서 주셨어요. 결국 그것도 잃어버리고, “난 왜 이러지?” 그렇게 된 거예요. 결국 내가 직접 만들자. 정말 긴장하면서 쓰자. 팽개치지 말고. 

그래서 볼펜을 만들었는데, 드디어 몇 년이나 안 잃어버리고 잘 쓰고 있어요. 몇몇 분들은 제가 쓰고 있는 볼펜을 보고 재미있고 좋다고 하셔서 몇 가지 볼펜을 만들고 있어요. 

걸쇠 역할을 하는 구멍의 형태가 위트 있네요. 모나미 프리미엄 볼펜을 처음 봤을 땐 금속 재질로 플라스틱으로 된 원본의 형태를 본뜬 것이 좀 어색해 보였거든요. 이 볼펜은 적당해 보여요. 같은 금속으로 만들었지만 과하게 완벽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편해 보여서 그런 거 아닐까요? 가장 필요한 기능만 집어넣고, 단순한 기술을 썼어요. 그런데 익숙해지면 쓰기가 쉬워요. 만져 보세요. 요즘에는 휴대폰을 쓸 때 액정 위로 글씨를 쓰잖아요. 이걸로 하면 잘 써지더라고요. 잘 쓰고 있어요. 심도 몇 번 갈았고요.

카메라에 비해 소소하고 말랑말랑한 느낌의 물건들을 왜 시작한 건지 궁금했는데,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카메라도 다르지 않아요. 모든 물건은 제가 쓰려고 시작한 거니까요. 

그가 직접 만든 물건의 목록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것도 있다. 한번은 오래 쓰다 망가진 하수구 트랩을 교체하려다 맞는 부속품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고민 끝에 직접 동판을 두드려 하수구 트랩을 만들기 시작했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 후 트랩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가 필요에 따라 만들어 썼던 다른 물건들처럼, 수리가 끝난 개수대를 쓰면서 느낀 만족감은 매우 컸다. 스스로 생각해도 조금은 미련해 보였지만, 사용하면서 느낀 즐거움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고 한다. 

비슷한 종류의 대량생산품을 마트에서 구입하잖아요. 백화점이나 인터넷으로도 구입하고요. 공예가들도 그런 생활에 익숙해진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직접 만든 물건들을 쓰면서 사는 사람이 많다고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것이 다른 모든 물건들을 대체하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만든 물건들이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조금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근본적인 기능은 완벽히 충족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 부분이 충족되지 않으면 저도 마트에서 사서 쓰죠. 

재료는 작업하는 사람들에겐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물건은 금속으로 만들면 안되는 것들이 있어요. 굳이 어떻게 해보려는 건 억지죠. 사람들은 그렇게 억지로 나온 작업들을 다 알아볼 수 있어요. 그러니 순리를 따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사야 될 것이 있고, 만들어야 될 것이 있고, 그런 거죠. 

공예를 전공한 저에게도, 만들어서 써야 할 주전자를 전시만 하는 그런 문화가 너무 어색했어요. 사실은 생활인데, 뭔가 세상에서 격리되어 있죠. 

먹고 살려고 하는 건데요. 

솔직히 먹고 살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먹고 사는 거잖아요. 

직업이죠. 

취미삼아 해 보는 일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네, 아침 몇 시에 와서 몇 시까지 일하고, 퇴근은 보통 몇 시에 하고, 조퇴는 거의 하면 안되고, 무단 결근은 절대 안되고, 혼자 정해놓고 혼자 하는데, 저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제 직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공예를 전공하고 사회에 나가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뭔가 딴 세계의 일을 하는 것 같은 부분이 있다면 그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판매할 물건을 만들 때에도 내가 쓸 걸 먼저 생각하면서 만들어요. 어떻게 하면 잘 쓰일지 생각하고, 항상 써 보고, 문제점이 있으면 고치죠. 그러면서 그 속에는 타협하지 않는 어떤 가치들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걸 만들지는 않는 것 같아요. 누가 보면 내가 뭔가 험블한 걸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내 일인 걸요. 구두 주걱을 만든다든지, 그런 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대단하고 뭔가 잘 생긴, 시간이 많이 들어간 걸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목표에 맞게 만들어져서 잘 쓰이는 것이 중요하지요. 쓰이도록 만드는 것이 공예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큰 작업, 잘 보이는 걸 해야 되는 때가 있었잖아요. 무언가 주연이 될만한 걸 만드는. “나는 이런 거야!”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런데 공예라는 이름으로 나온 물건들은 삶에서 없으면 약간 불편한 것들이지, 없으면 밥 못 먹고 굶어 죽고 그런 물건들이 아니니까요. 그러니까 ‘삶의 조연’들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예전에는 작업하는 사람들이 보통 파는 건 상품이라고 하고 그게 아닌 건 작품이라고 불렀어요. 두 가지로 작업 구분을 했던 거죠. 저는 처음부터 그걸 작업이라는 말로 통일해서 얘기했거든요. 그냥 내 작업. 그런 거죠. 

그는 이른 아침 그를 똑닮은 애견 노루와 함께 작업실에 출근해서 하루에 꼬박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일을 한다. 도착하면 우선 빗자루질도 하고 작업 환경부터 만들고, 일하는 동안에는 작업에만 집중하고, 저녁에는 되도록이면 야근을 안 하고 퇴근해서 일은 완전히 잊어버린다고 한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공예가도 직업이니까 꾸준히 매일 작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 계획을 볼 수 없다는 면에서는 계약직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래도 앞에 있는 걸 계속 해나가면서 직업과 작업을 이어간다. 자기 삶의 필요와 그가 만들어 낸 물건들의 쓰임을 번갈아 채우며 매일매일 하루하루.


글 최윤호 · 사진 김규식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