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빈, 아내를 만난 남자의 그릇

김석빈은 도예가고, 현에스더는 그의 아내다. 그런데 내가 만난 김석빈은 나무였고, 현에스더는 나무를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오래도록 느긋하게 자라던 이 나무는 요즘 한창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중이다. 이 남자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그릇에는 아내와 함께 시작하게 된 새로운 삶이 들어있다. 사랑의 줄타기가 빚어낸 절묘한 균형이 있다.

처음 김석빈의 블루라인을 보았을 때, 이 물건에는 뭔가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한국적인 것 같으면서도 서구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이 있지만 지극히 현대적이었다. 우선 그릇의 모양새 자체가 일반적인 한식기나 양식기의 전형에 들어맞지 않았는데, 굳이 따지자면 한식을 담아도 좋고 양식을 담아도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런 그릇이 지금 우리의 시대가 아닐까.

호감이 들어 몇 개를 사서 집에서 써 보았는데, 쓸수록 매력이 있었다. 실용기로서 편안하면서도 아름답고, 매일같이 쓰기에 무리가 없었다. 무심하고 허술한 듯 생겼는데 어떻게 이렇게 사용감이 쾌적할까. 마치 반대편에 놓인 것들을 잘 융합하고 접점을 찾아낸 일종의 해결책 같았다. 그런데 왜 그런 걸 생각해내야 했을까?

국민대 94학번으로 도예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한국세라믹기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그렇게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모아서 남들보다 좀 늦게 2009년에야 이천에 제 작업장을 열었고, 2011년에 처음 이천도자기축제에 나갔어요. 기술적으로 나름 뛰어난 것을 만들었다고 자부했는데… 참패를 했지요. 2010년에 결혼을 했는데…. 그때는 매일같이 생각만 했어요.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를요.

에스더가 여자들이 생각하는 그릇은 다르다고 했어요. 왜 다를까, 생각했어요. 아내가 갖고 싶어하는 비싼 외국 주물 제품 같은 걸 보면서, 사주진 못하지만 생각했어요. 그래, 그럼 여자들이 좋아하는 걸 해보자.

그래서 그는 오히려 과감하게 그때까지 없었던 시도들을 하게 된다. 접시에 손잡이를 붙이고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리고 양식기 한식기 일식기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감각을 익히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그는 블루라인 식기들을 만들게 된다. 그에게 “이건 제가 생각하는 저에게 다시 가까와졌어요”라고 얘기할 수 있는 그릇이다.

하지만 살펴볼수록 역시 이상하다. 분명 사용감은 탁월한데, 형태는 어딘가 모르게 살짝 이그러져 있는 듯하다. 그렇다고 못생긴 게 아니라 개성적이다. 게다가 사각 접시들에는 도판기 작업의 흔적인 천 질감마저 그대로 보인다. 보통 백자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대의 백자는 이것이 흙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끔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으니까. 그는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까.

백자를 만들 때는 그런 천 자국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들 생각하죠. 그건 고정관념이에요. 백자는 정갈하고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물건이라는 거. 그런데 저는 분청을 좋아해요. 예전의 우리 분청은 자유롭고 편안함, 토속적인 질박함, 그런 걸 보여줬어요. 제 성격이 분청이에요.

그럼 그냥 분청을 만들면 되지 왜 백자를 만드시나요? 하고 물었다.

매일 쓰는 식기를 만들고 싶었으니까요. 분청이 최선이 될 수 있을까, 기술원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실험 데이터들을 접했고, 고민했어요. 한계를 많이 느꼈지요. 기술적으로는 백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한술 더 뜬다.

좋은 식기를 만들고 싶어서 온도를 더 높게 땝니다. 보통 백자는 1230에서 50 사이에서 많이들 때는데, 저는 1300도를 고집해요. 강도와 흡수율의 차이가 생기죠. 물을 빨아들이는 정도가 1250도 때는 0.06에서 0.07 정도인데, 1300도까지 구우면 0.01에서 0.02까지 떨어집니다. 오래 쓰기에 좋겠죠. 더 가벼우면서도 단단해지고요. 납은 전혀 없어요. 납이 들어가면 낮은 온도로 때도 발색과 광택이 좋아져서, 쉽게 말해 원료비를 절감하려고 넣는 거거든요. 하지만 일반적인 기준보다 50도 더 올리는 건데 전체 원료비는 25%가 올라가요. 그래서 쉬운 선택이 아니지만, 이게 옳다고 믿습니다.

기술적으로는 최선을 추구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자유분방하고 편안하고 질박한 모양을 살리는 이 사람, 그러고보니 딱 어울리는 아내를 만났다. 마치 테라코타처럼 자연스럽고 포근한 인상의 미인. 에스더 씨에게 집에서 남편이 만든 그릇을 쓰고 있느냐고 물었다.

가능하면 저희 그릇만 집에서 사용하려고 해요. … 감자 같은 것도 그렇잖아요. 똑 떨어지게 예쁜 것만 팔리긴 하지만 못 생긴 애들도 먹는 데는 문제가 없잖아요. 가마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하는 그릇들, 그러니까 점 튄 아이들, 많이 일그러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좋아하고, 집에서는 그런 아이들을 써요. 팔 수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자꾸 정이 가네요.

그릇을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오랜 세월 청소년 활동을 지원하는 문화기획자로 일하다가 최근 남편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기획력과 행정력, 홍보력, 관리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하면서 ‘김석빈도자기’의 작업장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영감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이제 부부가 역할을 나누는 기업으로 또 새롭게 출발선에 선 것이다.

이 글에 ‘결혼이 남자에게 미치는 건전한 영향’이라는 부제를 붙여 둔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언제나 빛나는 단면만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들 부부가 울고 웃으며 만들어낸 이 그릇들은 우리 집 부엌에서 예쁘게 빛나고 있으니까.


글 이정혜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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