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예연, 일상과 물건을 콜드 조인팅하다

이 세상은 다 콜드 조인팅이에요.

그녀가 웃었다. 콜드 조인팅이 무언지 몰라 찾아본 후 이제 알게 됐다고 으쓱거리는 내게 그녀는 맞장구를 치며 싱그럽게 웃었다. 콜드 조인팅은 아주 옛날, 인간이 도구를 만들 때부터 사용했던 기법이다. 다양한 재료를 결합할 때 접착제나 용접, 땜을 사용할 수도 있지만, 박예연은 두 재료의 구멍을 뚫어 봉을 넣고 양 끝을 망치로 두드리는 제일 간단하고 쉬운 콜드 조인팅 기법을 사용한다. 또한 콜드 조인팅은 물건의 해체가 쉽고 수리가 편하며,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제작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이다. 그리고 그 기법을 실현시키기 위해 을지로 골목 구석구석을 헤매며 재료와 공구를 구입하거나 가공할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 때 저 혼자 모든 것을 가공하진 않아요. 그렇다고 기계가 모든 것을 해주진 않죠. 기계를 다루는 숙련자의 장단점을 잘 알고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어야 결과물이 바르게 나올 수 있어요.

그렇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얼까. ‘재활용과 재사용’, 바로 박예연의 물건이 던지는 핵심 화두이다.

저는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니까요.

그녀가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일회용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빵 하나를 사도 비닐에 싸여 있고, 무언가를 먹고 난 자리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보면 잠시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내 잊어 버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그녀는 쉽게 먹고 쉽게 버리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끝내지 않았다. 박예연은 재료를 다루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일 흔하게 쓰이는 페트(PET)를 가지고 어떻게 쓰레기를 줄일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도시락 용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면 사먹지 않아도 되고, 쓰레기도 줄일 수 있었다.

예쁘지 않나요? 그리고 도시락을 가지고 다닌 다음부터는 먹는 행위 자체도 아름다워졌다는 생각을 해요. 야채도 많이 먹게 되고 식습관이 달라졌죠. 그 전까지는 편의점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물론 이건 다른 사람한테 강요할 수도, 개인이 시스템을 바꾸기도 쉽지 않은 문제에요. 하지만 제 삶에서 제가 바꿔보면서 내가 이렇게 살 수 있으면 당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하나의 케이스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건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환경이나 가난까지 모두. 그리고 그 시작은 물건을 쓰는 방식과 시각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면과 선, 점의 만남이죠.

그녀가 눈을 반짝거렸다. 리벳이 드러나게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재료에 대한 설명부터 조곤조곤 말이 별처럼 쏟아진다. 리벳은 콜드 조인팅으로 결합한 양 끝에 튀어나온 머리 부분으로서, 그녀의 도시락 용기를 보면 페트 면과 스테인리스의 선, 리벳의 점이 만난다. 기계적인 느낌이면서도 정겹다. 무엇보다 박예연은 재료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한다. 투명하고 가벼운 페트와 견고하고 색이 변하지 않으며 위생적인 스테인리스, 가볍고 다루기 쉬운 알루미늄, 질기면서 잘 휘어지는 대나무 등 차가운 금속과 따듯한 나무의 느낌을 참 잘도 조합한다.

또한 그녀의 물건은 포크 겸 스푼 겸 나이프, 도마를 가진 브레드 박스, 도마에 수납된 나이프 등 하나의 물건에 두 가지 이상의 기능이 합쳐져 있다. 마치 맥가이버 칼 같다고나 할까. 이에 대해 박예연은 공간의 활용을 높이면서 물질을 아낄 수 있고, 재미도 있지 않냐며 다시 한 번 눈을 반짝거린다.

요즘엔 끈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끈 자체가 연결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자 경계가 될 수도 있고, 끊으면 한번에 다 분리가 되잖아요. 그리고 작가 입장에서도 하나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통일된 무언가는 있겠지만, 자꾸 바뀌어야만 살 수 있죠. 물론 제일 중요한 건 바뀌고 안 바뀌는 걸 떠나서 버티는 거에요. 쭉 이어가는 게 제일 어렵거든요.

재활용과 재사용 둘 다 필요해요.

그녀는 진지했다. 우리가 쉽게 쓰는 일회용품은 물론 재활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그녀는 적은 에너지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재료의 손실에 초점을 맞추면서 싼 재료로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커틀러리를 만들기 위해 레이저 커팅이 끝난 판의 남는 부분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생활에서 진짜 꼭 필요로 하는 게 무얼까로 이어진다. 그녀 자신 역시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지, 야채만 먹어야지,’라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러워지고 편해졌다. 자신의 물건과 일상을 분리하는 게 더 힘들지 않겠냐며 진지하게 반문했다. 그래서일까. 박예연의 개인전 타이틀은 힘이 들어가 있지 않고 무척 친근했다. Daily Picnic, Ordinary Day라는 제목에서 살가운 일상이 느껴진다.

“물건을 가만히 보면 아침이랑 밤에 보는 게 달라요. 그것은 꼭 일상생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인구는 많은데 어떤 사람은 너무 가난하게 살고, 어떤 사람은 너무 많이 가졌어요. 하지만 적은 물건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물건을 만드는 것 자체도 최소한 환경에 해가 되지 않게 만들고요.”

이유가 없는 게 너무 많아요.

그녀가 또박또박 전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그 이유를 담아.

이유가 없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아서 안타까워요. 선이 휜 것 하나 하나에도 다 이유가 있어야 하고, 재료를 사용하는 것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작업할 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다루는 재료와 선 하나 하나에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 거죠. 이유에 대한 고민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니까요.

물건의 홍수 시대에서 그녀는 작은 조각배를 탄 채 조용히 말을 건넨다. 어디를 가든 똑같은 형태의 물건에 색깔만 바꿔서 쏟아지고, 왜 그렇게 바뀌어야 하는지 이유는 모른 채 그저 사람들에게 팔기 위한 물건들이 범람한다. 볼 때는 혹하고 예뻐 보이지만, 기능에 대한 고민도 떨어지고 형태나 재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유가 있는 형태가 결국 기능에도 잘 맞는다는 것을 그녀는 보여준다.

재료든 살아가는 순간이든 소중하게 생각하면 버릴 일도, 함부로 할 일도 없지 않을까요? 만드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 모두 소중하게 만들고, 소중하게 사용하고, 소중하게 버리는 것이 곧 지속가능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자급자족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요. 기업과 사회에 너무 의존해서 살면 불공평한 게 많아지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소비가 너무 과한 시대에 그런 것들을 제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예가의 역할 아닐까요?

박예연은 곧 유학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어떤 대단한 것을 배워올까라는 기대보다는 그녀의 달라질 또 다른 생각과 방식이 궁금해진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녀가 껍질째 곱게 깎아준 사과를 다 먹고 나니 빈 그릇만 남았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상과 물건을 콜드 조인팅하면서 말이다.


글 Zinna · 사진 김규식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