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흙의 이력을 살피다, 도예가 장재녕

흙은 묘하다. ‘바위가 분해되어 이루어진 무기물과 동식물이 썩어 생긴 유기물이 섞여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부터 이미 많은 이야기가 엮이고 풀린다. 자연의 변화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동시에 인간이 태어난 곳이자 돌아갈 곳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묵직하게 품고 있는 흙. 그래서일까. 흙에 가만히 손을 대면 크고 작은 심장 박동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흙을 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에게 흙은 그저 재료일까, 대상일까, 아니면 자신일까. 거칠고 때론 부드러운 흙의 살결을 만지며 그들은 어느 시절을 회상할까. 그들이 묵묵히 빚어내는 것은 누구의 살이자 뼈일까.

도예가 장재녕은 흙의 이력을 살피고 대지에 박힌 유물을 발굴하는 일로 20대를 보냈다. 한 꺼풀 한 꺼풀 시간의 켜를 벗겨내 옛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는 일은 그에게 땅을, 흙을 다르게 보는 능력을 주었다. 수십 미터 아래 결이 다른 토양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개간했던 농부의 땀을 유추하고, 퇴적물이 많은 지층을 발견하면 홍수가 났던 수천 년 전의 한 장면을 연상하게 된 것이다. 이윽고 그는 시간이 압축되어 있는 흙을 단서 삼아 그 시대로 걸어 들어가 형태가 있는 유물들을 건져 올렸다. 

유물 발굴이라니, 시작이 궁금하다 

대학 시절, 아는 선배가 세라믹 비엔날레 전시 어시스턴트를 제안했다. 전시 디스플레이를 하러 갔다가 경기도 도자박물관 학예사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유물 연구 조사 같은 게 있는데 도자기 역사를 전공한 사람의 학술적 접근이 아닌 실기 전공자의 시선으로 다르게 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하더라. 그렇게 계약직으로 시작한 인연이 대학원 때까지 이어졌다. 곳곳의 가마터를 돌아다니며 그 안의 유물들을 발굴했다. 속성이 다른 지층을 하나씩 하나씩 벗겨내다 보면 그만큼의 시간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리고는 과거의 그 시대에 도착하는 것이다. 도예가로서 무척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의미’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영원히 땅에 묻힐 뻔한 가마터를 발굴한 것이다. 또한, 발굴한 도자기는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했다. 경기도 광주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는 전부 왕실용으로 쓰였는데 세조 몇 년 등 제작 시기가 표시된 편년 자료 도자기들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그 시대의 도자기들을 연구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이후 영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와 공방을 차렸다 

2013년에 시작했으니까 만 3년이 되어간다. 공방을 차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학생일 때는 프로토 타입으로만 나와도 되는 작업을 했었는데 공방을 차린 후 양산을 하고 매번 같은 품질을 맞춰야 하다 보니 기술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크래프트 팩토리라는 이름 자체에서 의도가 엿보인다 

원래는 백자 위주로 계속 작업했었는데 남들이 원하는 작업과 내가 원하는 작업이 일맥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결국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백자작업은 크래프트 라인으로 계속 이어가고 테이블 웨어 라인은 대량생산으로 일반적인 다수를 만족시킬 작업을 하는 식이다. 수작업으로 만들어낸 작품이 제품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좀 더 가볍게 다가가기를 바란다. 

왜 백자였나 

미묘함 때문이었다. 흰색은 다 똑 같은 흰색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미묘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대학원 연구 주제였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미감 중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한옥을 보면 나무나 돌을 특정 모양으로 깎지 않고 끼워서 만드는 것 등인데 생김새 그대로 끼워서 우연적 효과를 내는 것이다. 도자기에서도 그런 것들을 많이 찾고 연구했다. 정해진 형태의 네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흙을 치고 두드리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색감 자체도 흰색의 미묘하게 바뀌는 작은 변화들에 관해 집중하다 보니 백자 작업을 주로 하게 된 것 같다. 

백자 작업과 결이 다른 작업은 아무래도 ‘고고학’ 라인들이겠다 

소생공단에서 ‘Archeology(고고학)’라는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라인은 불확실성을 대입하지 않은, 철저한 기획 하에 제작된 테이블 웨어 라인이다. 웃는 얼굴들의 곡선들을 활용해 스마일 라인이라고도 불린다. 가마에 들어가는 사이즈, 형태별로 포개서 보관할 때 겹쳐지는 패턴 등을 고려한 작업한 첫 작업인 셈이다. 

그럼에도 역시 ‘미묘한’ 차이들이 많이 보인다. 

손잡이가 얇아서 주변 사람들이 좀 두껍게 보완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실 전보다는 많이 두꺼워진 거다. 잡을 때의 미묘한 차이, 곡선의 균형미를 살리고 싶었다. 실제 마시는 용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부러질 염려는 없다. 손잡이뿐 아니라 오브제가 매우 얇은 편인데 물레를 찬 후 건조시킬 때 윗부분이 먼저 말라서 칼로 다듬을 때 조금씩 다른 상태가 된다. 그래서 위에 물기만 살짝 날아갔을 때 밀봉을 하고 아래와 수분 함량을 맞춰가며 작업한다. 제작 시간이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굽이 낮은 것도 특징인데 굽이 높으면 설거지한 후 뒤집어 놓았을 때 건조가 잘 안 된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굽이 높아야 음식이 돋보인다고 하더라. 

담백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요소요소들이. 

처음 봤을 때부터 임팩트가 있거나 화려한 도자기는 아니다. 그러나 음식을 올려놓거나 계속 쓰면 쓸수록 좋은 느낌을 준다. 흙과 유약의 소박한 색깔이 나물 같은 한식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김치를 흰색 그릇 위에 올려놓았을 때와 검은색 그릇에 올려놨을 때가 다른 것이다. 그런 재미가 있다. 현재 11가지 컬러가 판매되고 있는데 사실 컬러가 많다는 것은 재고량을 넉넉히 둘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운영하는 데 있어 비효율적인 것이다. 같은 형태의 제품이 많은데도 특정 컬러가 없으면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하지만 나 같은 경우는 특별한 문양도 없고 형태도 단순하기 때문에 색감에 신경을 더 쓰는 편이다. 

미묘한 차이에 유약이 큰 몫을 하는 듯하다. 

검은색 유약은 불투명해서 흙을 덮어버리지만, 대부분의 도자기 색깔은 흙과 유약이 섞여서 난 결과이다. 푸른 빛이지만 자세히 보면 흙 색이 비치는 것이다. 마치 시스루처럼. 그렇기 때문에 흙과 유약의 성분 결합이 중요하다. 도예학과에 들어가면 재료학을 배우는데 유약을 만들 때 각 성분을 고려하면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유약이라는 게 결국 지층에 쌓인 광물들의 조성이다. 규석, 석회석, 철분 등 각 성분이 조합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내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이 흙에 이 유약은 어떤지 테스트를 많이 해본다. 흙과 유약의 숫자가 많아지면 경우의 수가 그만큼 많아진다. 그래서 순백자라 하더라도 흙과 유약의 성분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질감이 매트할 수도, 글로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도기와 자기의 차이는 무엇인가? 

도기는 조금 더 낮은 온도에서 구운 것으로 화장실에서 쓰이는 위생도기, 뚝배기, 항아리 등이 있다. 두드리면 둔탁한 소리가 난다. 반대로 자기는 종소리 같은 게 나는데 유약과 흙이 고온에서 완전히 밀착된 것을 ‘자화’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초의 화합물이라고도 하더라. 도기는 수분 흡수율이 높아 유약이 발라져 있지 않은 부분에 혀를 대면 달라붙는다. 자기는 식기류가 많다 보니 미술품이라는 인식보다는 공예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기능성을 가지고 누군가에게 쓰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업에서 가장 예민한 과정은? 

도자기라는 게 입체적인 형태를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의 핵심은 ‘불’과 ‘유약’이다. 이 두 과정에서 특히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가마에 들어갈 때 변수가 너무 많다 보니 그 불확실성 때문에 내내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작가들만 그런 줄 알았더니 나이 든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더라. 가마를 때면 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계속 매달리게 될까 봐 아예 그 곁을 떠나는 거다. 

한 번 제작하는 데에 18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들었다. 

우선 흙이 들어오면 토련기에서 흙을 만든다. 그런 다음 물레를 차서 원하는 모양을 만든 다음 건조한다. 건조에만 2~3일이 걸리는데 깎고 다듬은 후 초벌구이 한다. 초벌은 800~900°C 사이에서 진행된다. 초벌구이 하면 수분을 흡수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초벌구이 한 것을 유약이라는 파우더가 섞여 있는 물속에 넣으면 수분은 흡수하고 겉에 파우더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유(유약을 입히는 일)를 하고 다듬은 후 다시 재벌구이 해서 완성한다. 꼬박 쉬지 않고 작업해도 18일이 걸리더라. 

제작 시간이 길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다 

대량생산을 전제로 배운 게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도 되는 단계를 나 스스로 모른다. 어쩌면 그냥 넘어가도 다음 과정에 큰 영향을 안 미치는데 계속 붙잡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굽을 깎고 건조하는 과정이 있는데 내가 원하는 흙 컨디션 상태를 만드는 데에만 긴 시간을 할애하는 식이다. 장을 띄우듯이 밀봉시켜놓고 원하는 수분량을 만들기 위해 기다리는데 누군가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대신 과감한 테크닉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다. 소비자들이 알 수 있는 과정은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정교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온라인으로 도자기를 판매하는 것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도자기의 가장 큰 약점은 배송 중 깨지기 쉽다는 것과 기성품으로 나오는 게 아니어서 화면상으로 보는 색깔과 실제 제품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마마다 색깔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인데 소비자가 그걸 얼마만큼 마음에 들어갈 지도 변수다. 소생공단에서 신기한 경험들을 종종 한다. 재고가 없는 컬러를 주문한 고객들에게 다른 색깔로 선택할 경우 바로 받을 수 있는데 18일을 기다리겠느냐고 말하면 열이면 열, 18일을 기다리겠다고 하더라. 작업 과정을 공감해준다는 것. 이러한 부분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나? 

사실 이 시리즈를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수요가 더 많아지면 대량 생산으로 전환하고 방향이 조금 다른 시리즈를 새로 시작하고 싶다. 이번에는 곡선 위주의 작업을 했으니 다음에는 직선 위주의 작업을 하는 식으로. 대신 내 작업의 정체성, 즉 손작업이라는 느낌이 강조되는 것, 최대한 단순하게 요소를 정제하는 것 등을 유지한 채 작업들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이 만든 도자기들을 의인화해 이야기했다. 하나하나가 한 명의 사람 같다는 것. 그래서 흙을 대할 때는 짜증도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 짜증이 고스란히 흙에게 배어들어 가기 때문이다. 느리고 지난한 작업 과정에 관한 작가 스스로의 우려도 있었지만 이내 그 과정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에 관한 신기함과 고마움도 같은 빛으로 반짝였다. 인터뷰 말미에 넌지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그의 작품에 관해 물었다. 일본 공방에 1년 넘게 있을 당시 만들었던 ‘위드 피플’이라는 제목의 백자 작업이었다. 크래프트 팩토리 공방 입구에 자리잡고 있던. 

사람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에요. 사람들에게 눈, 코, 입이 있는데 저마다 조금씩 다르게 생겼잖아요. 도자기도 구형부, 몸통, 굽 같은 기본적으로 정해진 요소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비슷하지만 다르고 대칭으로 보이지만 대칭이 아닌 게 꼭 사람 같죠.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듯 흙을 빚어 크고 작은 도자기 군상을 만들었을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위해 아무도 예측하지 않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장재녕의 손끝에서 빚어진 흙에서 또다시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렸다.


글 김선미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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