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향, 고민은 바느질을 단단하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앞치마는 항상 빨간색이거나 초록색이었다. 순창고추장이나 진로소주 같은 데서 대형마트 행사 때 나눠주는 걸 무료로 받아왔기 때문이다. 고추장처럼 시뻘겋거나 소주병처럼 녹색인 앞치마를 입고 있는 엄마는 당연히 예쁘지 않았다. 언젠가 엄마가 된다면 딸의 품격과 안목을 위해서라도 괜찮은 앞치마를 입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막상 엄마가 되고 보니 예쁘고 튼튼하고 실용적인 앞치마 찾기가 수월치 않았다. 닭갈비 집에서 옷에 양념장이 튈까 봐 손님 수대로 나눠주는 앞치마 같은 거라면 널렸다. 캐릭터나 화려한 무늬의 앞치마도 흔해빠졌다. 그러나 만듦새가 단단하고 모양새도 훌륭한 앞치마는 서울시내에서 김서방 찾기만큼 어려웠다.

그러다 전지향을 알게 됐다. 남이 만든 앞치마를 보며 “이것도 훌륭하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여자.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앞치마가 많은데 내가 만든 거 하나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하는 여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기 때문에 전지향의 앞치마는 매일매일 좋아진다.

고집스럽고 선량한 1인이 만든 앞치마

홍대 가구 제품 디자인을 전공한 선후배 여섯 명이 모여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 노네임노샵. 누군가는 이들을 ‘고집스럽고 선량한 사람들’이라고 정의내렸다. 디자인을 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무모할 정도로 쏟아붓는 노네임노샵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전지향은 이 고집스럽고 선량한 6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녀가 9년 동안 동고동락한 노네임노샵을 잠시 그만 둔 이유는 임신과 출산 때문이다.

세상에 일하는 엄마들이 있잖아요. 당연히 출산휴가 뒤에 복직할 생각이었어요. 근데 현실적으로 육아는 내 모든 시간을 투자해야만 하는 일이더라고요.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 시간 투자가 많은 작업인데, 육아와 디자인을 동시에 할 수 없었어요.

그녀는 그렇게 휴직인지 퇴직인지 아리송한 상태로 있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찾아왔다. 24시간 엄마 손길을 찾던 딸 주하의 낮잠이 돌이 지나면서 두세 시간으로 길어진 것이다. 육아에서 해방되는 그 짧은 시간에 뭐라도 하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했다. 시간을 그렇게 흘려 보내기 아쉬웠다.

때마침 친한 친구이자 문래동에 있는 카페 생강 주인이 앞치마 제작을 의뢰했다. 직접 사용할 앞치마를, 그리고 여분은 카페 구석에 놓고 판매하겠다며. 사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사는 사람이 있.었.다. 몇 개 만들다 보니 슬슬 원단 욕심이 났다. ‘좀 더’ 괜찮은 앞치마를 만들고 싶어진 거다. 결국 직업병이 도졌다. 원단을 사 모으고, 자료를 찾아보고, 본을 떠서 숱한 테스트를 해봤다.

주하가 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자 본격적으로 앞치마 제작에 들어갔다. 아침 열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 그리고 아이가 잠든 뒤인 밤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그녀는 할머니가 물려주신 부라더 미싱 앞에 앉아 앞치마를 짓는다. 하루 열 시간 노동하면 그녀는 앞치마 세 개를 얻는다.

할머니의 부라더 미싱, 할머니의 제작 비법

1930년 생인 전지향의 할머니는 승복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녀의 집은 늘 스님들로 북적거렸다. 초파일에는 다섯 군데 절을 돌며 보시를 할 만큼 발도 넓었다. 두툼하고 질긴 무명, 따뜻한 손누비, 마지막 가는 길에 입으시는 수의까지 승복에 있어서 할머니는 못 만드는 게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할머니 덕분에 재봉틀에 대한 기억이 각별할 것 같아요.

수동식 재봉틀이라 발판을 밟는 딸각딸각 소리가 굉장히 시끄러웠어요. 여러 소음이 뒤섞여서. ‘재봉틀’ 하면 시끄럽고 먼지 날린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어느 여름에 절의 대청마루 같은 곳에서 보살 20여 명이 가사불사하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높은 스님이야 옷을 사지만, 일반 스님은 그럴 수 없거든요. 보살님들이 스님 옷, 절 방석, 이불 등을 1~2주 합숙하면서 공양하듯이 만들어요. 할머니는 이 사람은 마름질, 이 사람은 바느질 뜨기, 이 사람은 먹물 들이기 등으로 일을 분업화시키고 총 지휘를 하셨죠. 회색 몸뻬바지 입은 아주머니들이 빙 둘러앉아 수다도 떨고 주전부리도 먹으며 일하는데, 어린 나이에도 뭔가 재미난 일을 하는구나 싶었어요.

환경적으로 의상 디자이너가 될 법한데, 그녀는 재봉틀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로부터 결혼 선물로 관록 있는 재봉틀을 하나 받았다. 공업용과 가정용 사이의 옛날 부라더 미싱이었다. 할머니가 가진 여러 재봉틀 중에 하나지만 바느질이 튼튼하게 잘 박히는 좋은 물건이었다. 하지만 물려받은 것은 재봉틀뿐만이 아니었다.

앞치마는 평면 패턴으로 만든 다음에 입체에 입히는데, 혼자 만들다 보니 내가 생각한 맵시가 나오지 않고 어딘가 어설프더라고요. 할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웅얼대면서 한두 마디씩 툭툭 던져준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곡선 부분은 홈질로 한 번 박은 뒤에 다시 박으면 안 미워지지’ 이런 식인데, 경험에서 우러난 제작 노하우인 거죠. 가르쳐주시면서 ‘이 앞치마 사는 사람은 있니?’ 또 투덜대세요.

할머니의 참견이 손녀에게는 아주 귀한 제작 비법이 되었다. 반세기 동안 할머니가 생계를위해 갈고 닦은 재봉틀 기술은 그렇게 구전으로 건네졌다.

‘이 물건이 좋다’라는 느낌은 작은 디테일이 모여 총체적으로 온다

초반에 전지향은 예쁜 이미지에 갇힌 앞치마를 만들었다. 시접도 얇게 접어 한복 바느질처럼 곱다랗게 박았다. 거친 린넨과 고운 바느질은 사실 어울리는 궁합이 아니었다. 빨래 몇 번 돌리니 여기저기 바느질이 뜯어졌다. 재질과 용도에 맞는, 실용적인 바느질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바느질이 훌륭해야 좋은 옷이에요. 바느질이 제대로 되면 올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옷의 형태를 오랫동안 지속시켜줍니다. 사는 사람은 잘 모르지만 어떤 물건이 아름답다는 느낌은 이런 작은 디테일이 모여 총체적으로 오는 것 같아요.

그녀는 한참 고민해 재봉틀을 돌린다. 한참 고민해 옷감의 무늬를 맞춘다. 한참 고민해 박음질 선이 갈 곳을 찾는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앞치마가 많은데, 거기에 내 것 하나 더해 무얼 할까, 다시 질문한다. 이 질문이 그녀가 짓는 앞치마의 사소한 부분을 촘촘하게 매만진다.

유행 안 타는 기능적인 앞치마를 만들고 싶어요. 앞치마가 주인공이 아닌, 입는 분의 작업에 도움이 되는 정도였으면 좋겠어요. 앞치마를 입었다고 거추장스럽거나 불편해하지 않았으면 해요. 나는 만드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디자인과 재질 등에 신경을 쓰지만, 입는 사람은 편안하게 막 사용하면 좋겠어요. 흰색 앞치마에 뭐 묻으면 어쩌나 걱정하는 분이 많은데, 뭐 묻으면 어때요. 뻣뻣한 앞치마에 생활의 때가 묻어 조금씩 너덜너덜해지는 게 자연스러워요.

앞치마의 연장선에서 작업복을 만들려고 해요

내게 앞치마는 어떤 이미지였다. 영화나 잡지 속에 등장하는 살림 잘하고 외모도 그럴싸한 엄마들이 입고 있는, 일종의 상징이었다. 곰곰이 따져보면 앞치마의 기능은 명확하다. 옷을 보호해주는 일. 더 나아가 옷을 입은 사람을 보호해주는 일일 것이다. 그녀는 이 단순한 기능에 충실하고 싶다. 이제 그녀는 앞치마의 기능을 극대화한 작업복에 도전하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앞치마는 요란을 떨지 않는다.

앞으로 앞치마의 연장선에서 작업복을 만들려고 해요. 농부, 플로리스트, 정원사 등 특정 직업을 위한 기능적인 앞치마를 준비하고 있고요. 정원사는 가위나 도구를 넣을 주머니가 많은 앞치마가, 목수는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가 필요하다고 해요. 린넨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로 앞치마를 만들 거예요. 내 작업을 좀 더 풍성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글 김나리 · 사진 김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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